안희정·박원순 이어 백선엽까지…해석 분분한 정치권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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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7월 12일 0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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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상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모친 빈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맞이하고 있다. 2020.7.6 © News1
모친상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모친 빈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맞이하고 있다. 2020.7.6 © News1
정치권이 ‘조문’이 갖는 메시지와 영향력이란 예민한 주제를 두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전국 각지역의 단체장, 정당 소속 의원, 각계각층 유명인사에 이르기까지 ‘조문’에 담긴 함의와 자칫 ‘2차 가해’에 이를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과 개인적 친소관계에 따른 조문까지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이 거칠게 맞서고 있다.

문제가 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사례 모두 권력형 성추문과 관련돼 있기에 사회적 파장은 무겁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5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모친상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고, 유력 정치인들이 당과 소속기관의 이름과 자격으로 조문하며 촉발된 논란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 앞에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고(故) 백선엽 장군 국립현충원 안장 문제까지 겹치며 성추문 등 도덕성 문제에 보수·진영간 이견이 더해지는 양상이다.

조문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일어난 것은 지난 5일 안희정 전 지사 모친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의 조화가 도착하면서부터다.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과정에서 복역 중인 안 전 지사를 두고 “눈물을 흘리더라. 야위었다. 가슴이 아프다” 등의 공개 발언을 하면서 성폭행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조문 후 “우리 아버지도 제가 징역살이할 때 돌아가셨다. 굉장히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의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대표, 원내대표,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걸고 조화를 보낸 이 행동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라며 “오늘과 같은 행태가 피해자에게, 한국 사회에 ‘성폭력에도 지지 않는 정치권의 연대’로 비춰지진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조문 형식을 빌린 ‘2차 가해’라며 분노한 이들은 안 전 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하며 ‘미투 운동’에 불을 붙인 김지은씨의 책 <김지은입니다>를 구매하는 방식의 연대로 대응했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해시태그 ‘#김지은입니다’를 달고 책 구입을 인증하는 게시물들이 줄을 이었다.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대권주자이자 시민운동가로 명망이 높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전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충격적 소식도 함께였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한 정치권의 애도 역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를 낳았다. 특히 장례를 사상 첫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간 치르는 것을 두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반대글이 올라오는 등 논란이 격화됐다. 청원인은 “박원순씨가 사망하는 바람에 성추행 의혹은 수사도 하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며 “대체 국민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라며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청원이유를 밝혔다. 전날 저녁 해당 청원에 45만명이 참여했다.

여당 정치인들은 각자 자신의 조문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입을 굳게 닫거나 반대로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못하기도 했다.

당 대표 후보에 출마한 이낙연 의원은 지난 10일 박 시장 빈소를 찾았지만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조용히 빈소를 떠났다. 반면, 같은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시장 조문 후 한 기자가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질문하자 “예의가 아니다”며 “최소한의 가릴 게 있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해당 질문을 한 기자를 노려보며 “XX 자식들 같으니라고”라고 욕설까지 하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야당에서는 ‘조문=정치적 메시지’라며 조문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하며 ‘서울시장 박원순’을 탄생시킨 일등 공신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선을 그으며 조문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는 “서울특별시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조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서울특별시장이란 시 예산으로 집행하는 일종의 국가 주관의 장례식”이라며 “이 자체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앞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조문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전날 5일장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걱정과 우려, 문제제기를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고인의 삶을 추모하고자 하는 수많은 분의 애도와 마음도 최대한 장례에 담을 수 밖에 없음을 부디 이해해달라”고 했다.

한편 전날 별세한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한 추모를 두고도 정치적 해석들이 분분하다.

통합당은 백 장군을 추모하는 논평을 냈지만 민주당은 논평을 내지 않기로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백 장군의 생전 친일 행적 논란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고(故) 백선엽 장군을 직접 조문할 것을 촉구하며 여당에 날을 세웠다. 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백 장군이 대한민국을 지켜냈기 때문”이라며 “더민주당 일각에선 대한민국의 영웅을 친일파로 매도해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런 편협한 붕당적 사고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의당은 백 장군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한 결정이 부적절하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김종철 정의당 선임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백선엽씨는 일본이 조선독립군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세운 간도특설대에 소속돼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장본인”이라며 “백선엽씨는 이에 대해 반성은커녕 변명하기에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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