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으로 교류 물꼬… 군사회담이 남북 협상 ‘본게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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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회담 ‘1·9 합의’]남북 3개항 공동보도문 발표

걸어서 JSA 군사분계선 넘어…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이 눈 덮인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가슴에 붉은 
바탕의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단 리 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은 이날 군복 대신 정장에 넥타이를 착용하고 회담을 이어갔다. 
판문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걸어서 JSA 군사분계선 넘어…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이 눈 덮인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고 있다. 가슴에 붉은 바탕의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단 리 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은 이날 군복 대신 정장에 넥타이를 착용하고 회담을 이어갔다. 판문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년 1개월 만에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지만 우려했던 파행이나 회의 연기는 없었다. 회담 개최 10시간여 만에 남북이 공동보도문을 내며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남북관계 복원의 계기로 삼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남북은 향후 올림픽 실무회담, 군사회담 등을 추가로 여는 데 합의해 새해 벽두 물꼬를 튼 양측의 교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 ‘평창’ ‘평화’ ‘대화’ 강조한 공동보도문

남북은 9일 고위급 회담에서 크게 세 가지에 합의를 이룬 뒤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 적극 협력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평화 환경 마련을 위해 공동노력 △남북선언을 존중하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 등이다. 마지막 남북 회담이었던 2015년 12월 차관급 회담에선 남측이 북핵 문제를, 북측은 금강산 재개 등을 주장하다가 공동보도문조차 내지 못했다.

이날 남북은 회담 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평창 이슈를 시작으로 접점을 넓혀갔다. 우선 우리 측은 북한에 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에 선수단을 비롯해 ‘가능한 한 많은’ 대표단을 파견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또 개막식 등에 선수단 공동입장, 주요 경기에서 공동응원, 그리고 축제 분위기 확산을 위한 예술단 파견 등을 요청했다. 북측 또한 고위급 대표단을 포함해 ‘역대급 방문단’ 파견을 약속했다.

남북은 평창 외에 군사적 긴장 완화에 대해서도 예상보다 의견 접근을 이뤘다. 우리 대표단은 “한반도에서 상호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중단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비핵화 등 평화 정착을 위한 제반 문제를 논의하자”며 군사 실무회담을 제의했다. 북측 또한 “남북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군사회담 제의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17일 우리 정부가 제의한 군사회담은 6개월 만에 열리게 됐다.

북측은 우리 측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 제안에는 별다른 답을 주지 않았다. 우리 대표단은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을 감안해 2월 설 명절을 계기로 상봉 행사를 열자”고 제안했다. 북측은 “(남한) 여야, 각계각층 단체 및 개별 인사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왕래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면서도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 군사회담이 ‘본게임’ 될 듯

이날 남북이 개최에 합의한 군사회담은 조만간 개최 일정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회의에서는 현재 고조된 한반도의 위기 해법책을 놓고 첨예한 입장차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우리 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협력하면서 한반도에서 상호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조속히 비핵화 등 평화정책을 위한 대화 재개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북측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최종 공동보도문 발표를 앞두고 우리 측의 비핵화 발언에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위원장은 회담 후 북으로 돌아가기 전 ‘비핵화와 관련해서 (남측 언론이) 오도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오늘 의제에 없었나’라고 묻자 단호하게 “네”라고 답했다.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묻는 추가 질문에는 “또 어떻게 오도를 하려고?”라고 거칠게 답변했다. 우리 측의 비핵화 대화 재개 요청을 “언론의 오도”라고 말한 것이다.

이에 향후 재개되는 군사회담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및 취소나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최소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우리와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에는 귀를 닫은 채 민족의 관계 개선을 주장하며 한미 간 균열을 일으키는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평창 참가는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왔고, 군사 부분은 남북이 가능한 범위에서 얘기할 수 있는 중심으로 접근했다”고 평가하면서도 “진짜 더 어려운 것들은 일단 뒤로 미룬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관된 비핵화 노력에 대해 ‘김 빼기’에 성공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북한이 올림픽, 군사적 긴장 완화, 각계각층 왕래 등 다양한 평화 공세를 일제히 퍼부으며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인 북핵 문제에는 집중하지 못하도록 일종의 교란 전략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대남 평화 공세를 펼친 역사를 보면 한 번도 진정한 평화 공세를 한 적이 없다. 북한이 제시한 작은 평화 조건들에 우리가 쉽게 말려들어가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9일 남북 고위급회담 타결 소식에 일단 안도감을 나타내며 반색했다. 이번 회담에서 1차 목표로 삼은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확정한 만큼 기대했던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짧은 시간에 만나서 합의를 도출한 것을 보면 양쪽이 평창 올림픽 참여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앞으로 더 많은 만남과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추가적인 회담을 여는 데 합의한 것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 문제 외에 그간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해소하는 데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판문점=공동취재단
황인찬 hic@donga.com·손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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