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4일 신설된 국회 사법개혁 특별위원회에 당 적폐청산위원회 의원을 대거 기용했다. 정부 여당이 반년 넘게 추진한 적폐청산의 기조를 ‘인적 청산’에서 ‘시스템 개선’으로 전환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당은 사개특위에 정성호(위원장), 박범계, 진선미, 백혜련, 이재정, 이철희, 조응천 의원을 포진시켰다. 이 가운데 박범계 의원은 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아 지난해 전(前) 정권 의혹 제기를 총괄했고, 진선미 의원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다스 관련 의혹을, 이재정 의원은 MB 정부 문건을 대량 확보해 불법 사찰 의혹을 각각 제기해왔다. 전(前), 전전(前前) 정권 비리 의혹을 대거 파헤치던 의원들이 이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찰-경찰-법원 구조를 개선하는 사개특위에 대거 포진된 것이다.
박 위원장은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기존 당 적폐청산위도 그대로 활동한다. 다만 이제 사람에 대한 것(인적 청산)보다는 국회가 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방점을 찍고 갈 계획”이라고 했다. 개별 수사나 의혹에 대한 공세보다는 검찰 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시스템 개선과 개혁법안 처리에 주력하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적폐청산의 방향을 놓고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인적 청산을 위한 수사 독려파와, 이제 인적 청산에서 나아가 시스템과 구조개혁으로 방향을 옮겨야 한다는 시각이 혼재된 것.
이렇다보니 적폐청산을 둘러싼 당 지도부의 메시지도 혼재했다. 추미애 대표가 “마부정제(馬不停蹄·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의 각오”를 천명한 반면, 정세균 국회의장 등 여권 중진 사이에선 “인적 청산에만 급급하면 개혁과 혁신의 동력을 잃는다”는 우려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 집권 후 검찰과 각 부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조사가 계속되면서 누적된 피로감과 반복된 인적 청산에 드리워진 정치보복 논란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렇게 적폐청산을 둘러싼 여당의 메시지가 엇갈리고 있는 것은 검찰 수사가 거듭될수록 각종 의혹과 관련한 단서가 더 드러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도려내야 할 부패는 더욱 드러나는데, 보수 진영의 반발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점이 여당의 딜레마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권은 박근혜 정부 국정원 외에도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거액의 특수활동비가 여권으로 흘러갔다는 전 국가정보원 고위간부의 진술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수사로 연결될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 초점이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으로 맞춰지면서 후순위로 밀려난 상황이다.
의혹에 비해 여당은 공세 수위를 놓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 회의에서는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국회 위증죄를 물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지만, 당 차원의 고발조치는 없었다. 인적 청산에 대한 메시지나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는 기류가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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