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병 의식 회복]긴박했던 열흘간 지켜본 이국종 교수
가운 주머니에 논문자료 구겨넣고, 단백질 위주 식사… 절반은 남겨
직원 “환자것보다 못한 침대서 밤새”… 헬기기장 “비행중에 메스 드는 사람”
“아침 먹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첫 끼죠.”
이국종 교수가 식탁 앞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16일 낮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구내식당. 전날 북한 귀순병사의 2차 수술을 집도한 이 교수는 여전히 파란색 수술 모자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가운 왼쪽 주머니에는 진찰용 막대와 청진기, 펜이, 오른쪽 주머니에는 논문자료 몇 장이 구겨진 채 꽂혀 있었다.
그는 쉬지 않고 음식을 입에 넣었다. 주로 고기와 계란 프라이에 손이 갔다. 함께 식사하던 간호사가 “체력을 보충하려면 (단백질 중심으로) 먹어야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왼쪽 손목에 전자시계를 차고 있었다. 검은색 전자시계 끝부분에 흰 의료용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민감한 외과수술에 방해될까 시곗줄 끝을 고정한 것이다. 그때 한 간호사가 달려와 귓속말을 하자 이 교수는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절반 넘게 밥이 남아 있었다.
이 교수는 이날 아주대병원 별관에서 열린 ‘아주외상학술대회’를 주재하면서도 수시로 자리를 떴다. 병실을 드나들며 환자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그는 “행사 도중 환자 병실에 갈 일이 많아 굳이 외부에서 행사를 열지 않는다”고 말했다.
13일 북한 병사가 후송되고 22일 공식 브리핑 전까지 이 교수는 2차례 기자들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한 것 외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외상센터 내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이어갔다. 평소 이 교수의 생활과 다를 바 없었다. 병원 안팎의 사람들 눈에는 그저 늘 지켜봤던 이 교수였다.
“아이고, 내 아들 방이 이 모양이면 그냥 안 놔두지…. 침대가 환자 것보다 못해요.”
19일 외상센터 5층. 10㎡ 남짓한 이 교수 사무실을 청소하고 나오던 권모 씨가 혀를 차며 말했다. 권 씨가 본 이 교수 책상 위에는 의학서적과 논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책상 옆 간이침대에는 여름용 얇은 홑이불이 깔려 있었다.
아주대병원 지하 1층 세탁실. 이 교수의 가운이 걸려 있었다. 한 세탁실 직원이 떨어진 단추를 달고 있었다. 그는 “(교수님이) 완벽해 보이지만 수건 얻으러 올 때는 멋쩍어한다. 인상은 날카로운데 말끝마다 ‘부탁합니다’를 붙여 존댓말을 한다”고 말했다. 시설물을 관리하는 한 직원은 이 교수에 대해 “수시로 엘리베이터를 세우는 지독한 원칙주의자”라고 말했다. 외상센터 설립 초기 헬기로 이송한 환자를 응급실로 옮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며 이 교수는 2대뿐인 화물용 엘리베이터 중 1대를 계속 정지시켰다고 한다.
21일 외상센터 5층 화장실에서 이 교수를 다시 만났다. 그는 같은 층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 때문에 잠시 수술실 바깥으로 나왔다. 이 교수는 기자를 보자마자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나가라”며 기자에게 ‘퇴로’를 알려줬다. 평소 기자들 질문에 답변을 피하지 않는 그지만 북한 병사가 이송된 이후 병원, 군, 정보당국에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교수와 외상센터 설립을 위해 14년 전부터 합심해온 허윤정 교수(아주대 의대)는 “집이 유복한 것도 아니고,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닌 이 교수가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인 외상외과 교수가 된 건 우연이자 숙명이었던 것 같다”며 “언어도, 사람 관계에도 거칠지만 환자에게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의사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도 이 교수는 헬기를 타고 충남 서산을 다녀왔다. 50대 교통사고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서다. 헬기 조종간을 잡았던 이세형 기장은 “파일럿 생활 20년 동안 이런 의사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 기장은 “심정지 상태의 환자를 태우면 이 교수가 헬기 안에서 환자 가슴을 열고 심장 마사지를 한다. 의료진 손이 느리면 버럭 소리를 지른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집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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