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그물’ 만들어 이참에 부정부패 근본원인 차단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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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된다]<8·끝>무딘 칼 갈고, 그물망은 촘촘히

“법의 그물은 목표물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그물망은 촘촘해야 한다. 누구나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그물은 큰데, 누구나 빠져나갈 수 있게 구멍이 많다면 정비가 필요하다.”

“무딘 칼은 주변 살만 다치게 할 뿐 정작 상처 부위는 제대로 도려내지 못한다. 부정부패를 제대로 척결하려면 칼날을 보다 날카롭게 만들어야 한다.”

9월 28일 시행을 앞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각계에서는 이런 조언이 나온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좋은 취지를 가졌지만,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고 규제 기준이 두루뭉술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물론 김영란법이 보완을 거쳐 제대로 시행된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의 고리를 끊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특히 음식 접대, 선물, 골프 라운딩 등에 낀 가격 거품을 걷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많다.
○ 김영란법, 잘 다듬어야 잘 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음식물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등의 허용 상한선을 포함한 김영란법 시행령을 원안대로 확정하고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규개위 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 시행령이 완성되는 시점은 9월 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꿔 말하면 아직까지는 칼날을 다듬을 기회가 남아 있는 셈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은 입법 목적을 충분히 살리되 잘 보완해서 시행해야 한다”며 “우선 법이 통과되기 전 삭제된 ‘이해충돌 방지 규정’(공직자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자신 및 가족의 이익 추구를 막는 것)을 되살리고 적용 대상은 공직자로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3, 5, 10’ 규정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패 척결을 하려면 대가성 판단에 대한 수사방법을 발전시켜 뇌물죄 처벌을 강화하면 되고 식사비, 선물비 등의 규제는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기업활동이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실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법조인들은 물론이고 주관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마저도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며 “물론 ‘스킨십 마케팅’에만 집중해 온 대관 및 홍보 담당자들도 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보다 체계적인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나오고는 있다”고 전했다.

법 적용 대상에 사립학교와 언론사가 포함된 데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과 상관없이 해당 직종 종사자들의 자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나아가 금융 의료 제약 건설 등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지만 접대, 청탁, 리베이트 논란이 끊이지 않아온 여러 민간 부문도 뼈를 깎는 도덕적 재무장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건강한 소비문화 정착의 계기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한국 사회 특유의 허례허식 문화를 털어내고 소비시장 곳곳에 낀 과도한 거품을 제거하자는 조언도 나온다.

그린피에 붙는 과도한 세금을 낮춰 골프 대중화를 앞당겨야 한다는 제안도 그중 하나다. 일반인이 큰 부담 없이 골프장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접대 골프’가 점차 사라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그린피는 보통 주말 기준으로 1인당 20만 원을 웃돈다. 이종관 골프장경영협회 홍보팀장은 “골프장을 호화사치 시설로 간주하면서 이용객들에게 개별소비세(2만1120원), 준조세(체육진흥기금) 등 과다한 부담을 떠안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골프장에 적용되는 개별소비세는 카지노의 3배, 경마장의 16배, 경륜장의 37배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카드 고객을 타깃으로 한 고급 음식점, 고가 명절선물 등도 개선의 여지가 큰 부문으로 지목된다. 개인 돈이 아닌 회삿돈으로 쓰다 보니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도 수요층이 꾸준하게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 백화점에서는 5만 원 이하의 선물세트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한우 굴비 등은 물론이고 과일을 몇 개만 담아도 5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선물세트를 보면 굴비든 과일이든 포장이 지나치게 번지르르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법이 정착되면 업무로 만날 때 불필요하게 고급스러운 식사를 배제하고 선물도 간소화될 것”이라며 “그러면 자연스레 건강한 소비문화 정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국 종합

※ 자문단 명단(가나다순)

강신업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김상겸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 김용철 한국반부패정책학회장, 김주영 명지대 법학과 교수, 김현용 수산경제연구원 연구실장, 박재영 서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호상 국립극장장,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경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대표,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이병규 축산관련단체협의회장,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완 대진여고 교사, 임영호 한국화훼협회장,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영란법#부정부패#부정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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