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상진]벼랑 끝에 선 제1야당과 문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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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세력 멋대로 독주… 오만과 착각의 극치… 낡은 진보, 黨파멸 우려
자기반성 없는 文대표의 치명적 한계
국민신뢰 무너뜨려 야권개편 회오리 불 것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12·3 독주 선언으로 한국 정치, 특히 야당 정치에 일대 격변이 불가피해졌다. 제1야당 지도부의 협량한 정치력, 강고한 기득권, 골수에 밴 듯한 흑백논리, 철저한 무책임이 거대한 후폭풍, 민심 이반을 불러오고 있다.

이런 지도부가 민주당 전통의 제1야당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자 수치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단, 정부·여당의 무능, 국정 파탄에 분노하는 시민들이 슬프게도 제1야당에 등을 돌리는 엄중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를 초래한 패권적 당권세력이 털끝만큼의 반성도 없이 자신의 입맛대로 독주하겠다니, 이것은 오만과 착각의 극치요 당을 지지해온 유권자에게 떠날 테면 떠나라고 엄포를 놓는 것과 같다. 낡은 진보가 드디어 당을 파멸시키지 않을까 실로 두렵다.

지도부는 혁신을 내걸지만 지난 경험을 보면 혁신은 반대파를 숙청하는 수단이었다. 혁신의 이름으로 수혈된 ‘새 피’가 당권세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성도 신선함도 없다. 그저 권력을 연장하려는 도구요 구호일 뿐이다. 그런데 권력의 몸통은 썩었고 독단에 차 있다. 이것을 숨긴 채 제1야당으로서 그들만의 특권을 향유한다면, 누가 그런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가?

이들의 탐욕 앞에 국민이 애처롭다. 어찌할꼬! 절망적인 탄식이 지지 유권자들의 가슴을 새까맣게 태운다. 정부·여당의 국정 파탄을 생각하면 당연히 제1야당을 힘껏 밀어야 하건만, 도대체 그 지도부를 믿고 따를 수가 없으니 실로 딱한 일이요 힘든 딜레마다.

그러나 궁즉통(窮則通), 상황이 절박하면 길이 열린다. 막다른 골목에 서면 시공이 압축되고 모든 질료가 섬광처럼 분해된다. 분노와 초조, 환멸, 압력과 열망이 뒤엉켜 의식의 탈바꿈을 이끈다. 묻지 마 투표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정당에 예속된 유권자의 의식이 해방된다. 이런 자유인의 물결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런 의식 변화가 커다란 정치 변동을 이끌 가능성을 예상한다. 이런 물결을 타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지도자들이 모여 야권을 개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상곤 혁신위의 혁신안은 이미 함량 미달로 규정된 상태다. ‘리얼미터’가 공개한 12월 2일 설문조사를 보면, 이 안으로 당을 혁신해야 한다는 의견이 22.2%인 반면, 이를 폐기하고 새 혁신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41.0%로 나왔다. 새정치연합 지지자들도 압도적으로 새 혁신안을 요구했다. 이에 문재인 대표는 안철수 의원이 제안했던 10개 혁신안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밝혔다. 이 안에는 낡은 진보 극복을 위한 진실 소명과 화해의 집중 토론이 있고 18대 대선 평가보고서의 공개 검증도 있다. 문 대표가 먼저 이 과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과오를 소상히 밝힐 용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충언컨대 제1야당은 유권자의 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 유권자의 기대는 당권 사수용 겉치레 혁신이 아니다. 혁신은 잘못된 적폐가 누적되었을 때 나오는 요구다. 따라서 이 적폐를 해부해서 도려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미래를 약속하기 전에 일단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잘못을 깔끔히 소명하고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말자는 결의를 나누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다. 그래야만 유권자의 마음에 믿음과 신뢰가 살아난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표의 치명적인 한계는 자기반성, 즉 책임의식이 전연 없다는 점이다. 대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기득권을 챙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사람들이 믿지를 못한다. 그에게 국가 운영을 맡긴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것이 있겠느냐는 회의가 넓게 퍼져 있다. 이것은 심각한 신뢰의 고갈을 뜻한다. 만일 이런 상태로 계속 가면 유권자의 탈바꿈이 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는 가치판단의 돌연변이가 넓게 퍼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신당을 둘러싼 정치 지형이 크게 변할 것이다. 야권 개편의 회오리바람이 불 것이다.

제1야당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아직까지는 127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처럼 보이지만 순식간에 군소 정당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민주당 60년의 전통을 잇기도 힘들다. 늦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에 못지않게 문재인 대표의 오만과 오판도 꼴불견이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문재인#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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