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속살]53일 만에 임명… 정무수석 어떤 자리기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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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소통, 때론 거래… 청와대-여의도 잇는 ‘정치 해결사’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정무적인 일과 관련한 대통령의 국정행위를 총괄적으로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1] 올해 3월 중동 4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을 서울공항에서 영접하는 조윤선 정무수석(왼쪽에서 두 번째). [2] 2012년 1월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환송하는 김효재 수석(왼쪽). [3] 수석비서관회의를 마친 뒤 유인태 수석(왼쪽)과 이야기를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 [4]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문희상 수석(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수석비서관 내정자들과 만나고 있다. [5] 김영삼 대통령이 이원종 수석(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현기환 전 새누리당 의원(초선)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면서 ‘정무수석 실종사태’가 종식됐다. 5월 18일 조윤선 전 수석이 공무원 연금개혁 추진 과정에서 낙마한 뒤 53일 만의 일. 두 달 가까이 정무수석 자리가 비어 있다 보니 ‘없어도 그만’인 자리가 아니냐는 자조의 소리까지 나왔지만 박 대통령은 친박(친박근혜)계 정치인 중 측근 인사를 택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파동을 통해 보여준 여권 내 분열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도 보인다. 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부산 사하갑에 출마해 당선됐던 현 신임 수석은 부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사석에서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기환 수석 기용은 집권 중반기 당청관계를 견인할 박 대통령의 ‘히든카드’인 셈이다.

당청관계 복원을 위한 회심의 카드 현기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정무수석 공백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5월 박 대통령의 첫 미국 순방 도중 성추행 추문으로 윤창중 대변인이 전격 경질되면서 이정현 정무수석이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뒤 두 달 가까이 공백기를 겪었다.

난산(難産) 끝에 현 수석을 낙점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당초 여권에서는 3선(選) 정도의 전직 의원 중 한 명이 낙점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현 정부 들어 정무수석을 맡은 이정현 박준우 조윤선 전 수석이 모두 초선 의원 출신이거나 정치 경험이 없어 여의도 정치와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이 초기 하마평에 오른 이유다.

인사를 어렵게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대다수 정치권 인사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를 희망했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염두에 뒀던 인사 중 상당수는 가뜩이나 수석들의 위상이 떨어진 상황에서 1년 남짓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 4년을 희생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무수석 자리를 고사(固辭)했다고 한다.

현 수석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가깝다는 점 역시 박 대통령이 마지막 인선 확정 과정에서 고심했던 요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무수석이 여당 지도부와 너무 친밀하면 자칫 청와대 의견을 당에 전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당의 의견을 청와대에 전하는 역할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을 고민했다”며 복잡한 내부 기류를 전했다.



현기환은 46번째 정무수석

정무수석은 대통령비서실 소속으로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국회의 운영 및 정당과 관련한 업무보고, 행정 및 치안에 관한 국정 운영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보필하는 것을 주업무로 삼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휘하에 △정무 △행정자치 △국민소통 △치안비서관을 두고 있다.

1968년 박정희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이 6수석 체제로 출범할 때 신설된 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1년 동안 운영됐다가 일시 폐지됐다. 노무현 정부의 첫 정무수석이자 마지막 정무수석이었던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당시 정부가 책임 장관제를 도입해 여의도 정치권과의 접촉을 각 장관에게 맡기겠다는 차원에서 폐지했다”며 “과거처럼 정치권에 제공할 ‘당근’도 없는 상황이어서 정무수석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무수석을 통한 정치권과의 막후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정무수석 자리는 이명박(MB) 정부가 출범한 2008년 3월 부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3년과 1980년 정무1수석실과 2수석실로 일시 분리된 적이 있다. 조윤선 전 정무수석까지 45명이 이 자리를 거쳐 갔다.

김영삼(YS)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장관급으로 운영한 적도 있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뒤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석채 전 KT 회장의 전례에 따라 이원종 당시 정무수석도 장관급으로 격상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잇따른 인사실험

박근혜 대통령이 초대 이정현 수석 후임으로 박준우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정무수석으로 발탁한 것은 파격을 넘어 정치적 실험으로 인식됐다. 전현직 정치인이나 저명한 언론계 출신이 주로 맡아오던 정무수석 자리에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정통 외교 관료의 길을 걸어온 인사를 기용한 것은 전례가 없었다.

수차례 자리를 고사했다는 박 수석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박 대통령은 “‘선진 정치문화’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박 수석은 여의도에서 허구한 날 폭탄주를 마시며 ‘음습한’ 정치적 거래나 하는 과거의 정무수석과는 다른 제3의 길을 모색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무수석으로 기록됐다는 의견이 많다.

‘도대체 박준우가 누구냐’며 박 수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한국의 배타적인 여의도 정치문화도 박 대통령의 인사실험이 성공적이지 못하게 한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여성 정무수석인 조윤선 카드 역시 파격이자 실험이었다. 초선 비례대표 출신을 과거 기준으로 따지면 ‘여의도 민원수석’으로 기용한 것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주변 인사들은 조 전 수석이 평소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며 중압감을 종종 토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며 추진했던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 조 전 수석은 비박계 새누리당 지도부인 김무성 대표 및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청와대 간 이견 조율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와 친박계를 화해시켜라

과거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인사들에게 현기환 정무수석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물어봤다.

2010년 7월 세종시 수정안 부결의 여파로 인해 대통령비서실 개편의 와중에 정무수석 자리에 오른 정진석 전 국회사무총장은 분당설이 나올 정도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계의 가교 역할을 하라는 특명을 받았다고 한다. 여권의 내홍을 봉합하고 매끄러운 당청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제1과제였다는 점에서 현기환 신임 수석과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인식하에 청와대는 박근혜 대표와의 교감 속에 정진석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정 전 수석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8월 21일 이 대통령과 박 대표의 청와대 회동을 성사시킨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며 “이후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봉합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협력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극도로 보안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을 의식해 국무회의 때 자주 만나던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철저히 함구했고, 청와대의 민정수석과 홍보수석에게도 회동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정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고 여의도 정치의 생리도 잘 아는 만큼 당청관계를 고려한 적절한 카드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이 성공의 요건

MB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한’ 세월을 보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광우병 괴담’에 이은 촛불시위 등의 여파로 1기 청와대 참모진이 물러난 뒤인 2008년 6월 정무수석에 기용됐다.

맹 전 장관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5월)과 김대중 전 대통령(8월)의 서거 당시를 가장 큰 도전으로 꼽았다. 맹 전 수석은 “당시 정정길 비서실장과 함께 비보를 접하자마자 곧바로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으로 갔다”며 “정무수석실을 중심으로 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적극 소통했다”고 말했다.

맹 전 수석은 성공적인 정무수석의 조건으로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꼽았다. 사사건건 시시콜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일을 추진할 경우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정책 추진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큰 틀에서 협의한 뒤 사후 보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결국 문제는 대통령과의 신뢰관계이고 결과가 잘못될 경우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현 수석의 성공 여부도 이 같은 요소가 결정지을 것”이라고 했다.

또 여의도 정치 경험은 성공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고 봤다. 그는 “한번 일이 터지면 자리에 앉을 시간도 없이 바쁜데 일일이 찾아가서 만나 협조를 요청하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며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할 수 있으려면 여의도 경험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회의 권한이 비대해진 현재의 우리 정치 현실에서 여야 정치권의 협조 없이는 정부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정무수석의 최대 역할은 청와대와 정치권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무수석은 대통령 대신 욕먹는 자리


YS 정부 시절 이원종 정무수석은 3년 2개월을 재임해 역대 최장수 정무수석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박정희 정부 시절 정무1, 2수석으로 나뉘었을 때 유혁인 정무1수석의 6년(1973년 12월∼1979년 12월), 정상천 정무2수석의 5년(1973년 12월∼1978년 12월) 재임에 이어 세 번째 장수 수석이다.

이 전 수석은 정무수석은 다른 수석보다 어려운 자리라고 단언했다. 경제도 문화도 모두 정무적 입장에서 보는 감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대통령의 행위 자체가 정무행위인 만큼 국정 행위 전체가 다 정무수석의 업무영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그는 직언이라는 것이 말은 쉽지만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이 전 수석은 “비서가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대들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욕먹을 것을 대신 뒤집어쓸지언정 나는 특정 사안에 책임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유인태 의원은 “결국 대통령의 신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대통령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정무수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여당 의원이든, 야당 의원이든 정무수석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정무수석과 적극 소통하고 힘 실어줘야

전직들은 훌륭한 정무수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최고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YS 정부 시절 ‘왕(王)정무수석’으로 불렸던 이원종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현재 누구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 수석이든 장관이든 임명을 했으면 믿고 일을 맡기고 정책 결정에 재량을 줘야 하는데…”라며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유인태 의원도 “박근혜 정부에서 누가 정무수석이 된다 한들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많다”며 “대통령이 스타일을 바꿔 정무수석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의도 정치권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흥정이나 뒷거래로 보기보다는 당청관계를 강화하고 타협의 정치문화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고언이다.

현 수석의 성공도 상당 부분 박 대통령의 용인술에 달려 있다고 보는 의견도 많다.

::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

대통령비서실 소속 정무직 공무원으로 차관급이다. 대통령의 정치행위와 관련된 국정운영을 보좌하고
조언하는 것이 주 업무. 행정부와 입법부 간 업무 및 대(對)국회 관계를 총괄적으로 조율한다. 한때 여야 정치인들의 지역 숙원사업
등을 들어주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해서 ‘여의도 민원수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정무수석은 휘하에 △정무
△행정자치 △국민소통 △치안비서관을 두고 있어 행정 및 치안에 관한 업무도 맡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2월
“당정 분리의 원칙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겠다”는 이유로 한때 폐지되기도 했다. 현기환 신임 수석은 46번째 정무수석이다.
하태원 triplets@donga.com·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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