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北천안함-연평도 도발 언제든 다시 조사할 수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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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재판관 3人 합동 단독인터뷰]
인터뷰=최영훈 논설위원·김정훈 사회부장

《 ‘사법 한류(韓流) 1세대’가 있다.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73)과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61), 그 뒤를 잇는 정창호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ECCC) 재판관(47)이 그렇다. 이들은 7∼10일 대법원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참석하기에 앞서 6일 서울 시내에서 동아일보와 단독으로 만났다. 한자리에 모이기조차 어려운 국제 재판관 3명의 합동 인터뷰에서 이들은 최근 국제재판의 현안과 북한 문제와 관련한 비화 등을 소개했다. 》  

국제 사법기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 국제재판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가운데)과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부소장(왼쪽), 정창호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 재판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대법원이 7∼10일 
주최하는 국제법률심포지엄에 참석하기에 앞서 동아일보와 6일 오후 3시간여 동안 합동 인터뷰를 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국제 사법기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 국제재판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가운데)과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부소장(왼쪽), 정창호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 재판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대법원이 7∼10일 주최하는 국제법률심포지엄에 참석하기에 앞서 동아일보와 6일 오후 3시간여 동안 합동 인터뷰를 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예비조사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

국제재판소에 진출한 ‘대한민국 대표 법관’ 3명은 최근 ICC의 결정이 한국에서 오해를 받고, 무관심에 놓여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송상현 ICC 소장(73),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61), 정창호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ECCC) 재판관(47)이 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대법원 주최로 7∼10일 열리는 ‘법치주의와 인권을 위한 국제사법 협력’ 국제법률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3시간이 넘게 이어진 인터뷰는 동아일보 최영훈 논설위원과 김정훈 사회부장이 진행했다.

○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조사 언제든 재개 가능”

―지난달 23일 ICC 검찰이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전쟁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송=나는 상고심 재판장이라 언급하기 곤란하다. 중립성이 문제될 수 있다.

▽권=전쟁범죄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로선 전쟁범죄로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쟁범죄가 성립하려면 군인이 아닌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공격했다는 사실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북한이 쏜 포탄 개수와 떨어진 지역을 분석하고, 북한 무기가 타깃을 정확히 조준할 수 있는지 성능도 살펴야 했다. 포탄이 대부분 민가가 아닌 곳에 떨어진 점(230발 중 200발)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전쟁 중이냐, 휴전의 정확한 의미는 뭐냐 같은 근본적인 논란도 있었다.

―결정문 원문을 읽어보니 북한의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정보가 제공되면 조사가 재개될 것이라는 내용도 있던데….

▽권=전쟁범죄가 아니라고 하면 앞으로 북한이 똑같은 공격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불기소장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했다. 면죄부를 준 게 아니다. ICC는 보고서에 북한의 무력 도발을 용납하는 것으로 여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다시 위협이 가해질 경우 예비조사를 재개할 수 있는 여지를 분명히 밝혀 놨다. 다만 아직은 고의적으로 쐈다는 증거가 없어서 ‘지금은’ 종결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증거가 나오면 조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구절도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연평도 포격이나 북한 인권 문제 등으로 기소할 수 있나.

▽권=현재 상황에서 기소하는 게 유리한지 따져봐야 한다. 김정은을 한번 기소하면 남북 정상회담이 불가능하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한국도 ICC 회원국이기 때문에 체포영장을 집행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송=김정은을 기소하기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는 유엔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다. 상임이사국의 반대 없이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반대할 걸로 생각하는데 국제정세는 언제 어떻게 급변할지 모른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

○ “국제재판은 현직 대통령 면책특권 인정 안 해”

―대량 학살범죄를 저지른 여러 현직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이 잇따라 발부되고 있다. 국내법에는 면책 특권이 있는데, 국제재판에서는 다른가.

▽권=현직 대통령 체포와 기소를 유예하는 국내법적 면책특권은 국제재판소에서 통하지 않는다. 유고재판소가 처음 생겼을 때 재판관 선서를 한 다음에 할 일이 없어 집에 가야 한다는 농담도 있었다. ‘쇼’라고 여겼던 국제재판소 구상은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됐다. 과거에는 현직 국가원수를 전범재판에 세우려 할 때 대다수 법학자는 주권 침해라고 했지만, 지금은 면책특권이 없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서 법의 지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전쟁범죄를 실제로 보면 어떤가. 재판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송=유엔 산하기구인 유고와 르완다 국제재판소가 전범 처리를 하느라 유엔 예산의 10분의 1을 쓴다고 공격을 받는데, 전쟁 대가와 피해자 트라우마를 생각한다면 많은 비용이 아니다. 폭탄 몇 개 값보다 이게 적다. 이제는 잘못하면 ICC에 끌려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권=최고지도자의 책임까지 연결하는 게 퍼즐게임 같다. 자백을 안 하고, 결정적인 증거가 별로 없다. 유고의 경우 집단매장을 전후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찍은 위성사진이나 전쟁 도중에 도청한 자료들이 증거로 쓰이기도 했다.

○ “ICJ 재판관도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국이 더 진출할 분야나 추진할 과제가 있나.

▽송=(만약 독도 영유권 문제가 제소된다면 판단할 권한을 가지는 69년 역사의) 국제사법재판소(ICJ)에는 아직 한국인 재판관이 없다. ICJ 전체 재판관 중 아시아 몫 3자리 중 중국이 상임이사국으로 1석, 일본은 유엔 분담금 1위라 1석을 가져갔다. 아시아 3석 중 동북아 2자리를 선점해서 한국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권=국제정세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일본한테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정 재판관과 같은 인재들을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다.

▽정=다른 대륙엔 모두 인권재판소가 있는데 아시아만 없다. 아시아 인권 침해국이 갈 데가 없어 ICC에 자꾸 온다고 한다. 아시아 경제도 발전했고 국제재판 경험 있는 법조인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논의할 때가 됐다.  

▼ “모든 판결문에 근거 달아 신뢰 높여야” ▼

한국 사법부가 배울 점은… 재판은 ‘누가’보다 ‘어떻게’가 중요
‘法논리로 국민 설득’이 국제 관행


“예전 판례를 비교 분석해서 새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판결했으니 믿어달라는 게 아니라 ‘법적인 논리(legal reasoning)’의 힘으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게 외국 법조계의 관행입니다.”

10년 이상 국제재판소에서 재판을 해온 재판관들은 한국 사법부가 배울 점으로 ‘재판의 신뢰’를 강조했다. 권오곤 부소장은 판결문의 신뢰는 누가 재판했는지보다 어떻게 재판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는 판결 이유를 쓰면서 사실관계를 기술할 때에도 문장마다 각주를 달아둔다. 모든 판단에 근거를 달아서 재판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설명이다. 권 부소장이 재판장을 맡고 있는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의 재판 때도 제출된 범죄사실만 별지로 300쪽에 달한다. 검토해야 될 속기록이 4만5000쪽, 소송 관련 기록은 8만5000쪽, 증거기록은 13만 쪽이나 된다.

권 부소장은 “기록이 너무 방대해 판결문을 쓰는 데에도 1년이 걸린다”면서 “하지만 양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사실엔 근거를 단다”고 말했다.

정창호 재판관은 피해자를 재판의 당사자로 받아주는 프랑스 재판제도를 소개했다. 정 재판관이 속한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는 다른 국제재판소와 달리 프랑스식 재판제도를 도입했다. 피해자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진술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정 재판관은 “피해자들도 피고인처럼 재판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쌓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정리=정원수 needjung@donga.com·신동진 기자
#ICJ#국제재판#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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