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원재]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든다던 정부 숙제 검사하듯 투자-고용 압력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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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기자
장원재 기자
“매번 숙제 검사받는 기분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14일 열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30대 그룹 사장단 간 간담회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윤 장관은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 사장단을 모아 놓고 “규제 개혁에 앞장설 테니 투자 활성화와 고용 창출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그가 취임 후 거의 분기별로 한 번씩 사장단을 소집해 되풀이한 단골 멘트다.

사실 이번 간담회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당초 산업부는 30대 그룹의 지난해 투자 및 고용 실적을 받아 목표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올해 계획을 집계해 발표하려 했다. 하지만 상당수 그룹이 기한 내에 자료를 내지 않아 집계는 무산됐다. 작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이 많다 보니 자료 제출에 큰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윤 장관은 그동안 간담회를 열 때마다 투자 고용 실적을 직접 꼼꼼히 챙겼다. 지난해 10월 간담회에선 수업시간에 발표하듯이 사장들이 돌아가며 투자 고용 진척 상황을 밝히고 ‘남은 기간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간담회가 끝난 뒤 흡족한 표정으로 “4분기(10∼12월)에 투자가 몰려 있어 연말까지 투자 목표 155조 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30대 그룹 중에는 기자들에게 ‘지난해 발표한 목표는 잊어 달라’며 읍소하는 곳이 많다. 새 정부에 성의를 보이려 했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장단을 모아 놓고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했던 윤 장관으로서는 민망한 상황이 됐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기업들은 윤 장관이 말려도 투자를 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팔을 비틀어 약속을 받고 ‘지키라’고 윽박질러 투자와 고용을 늘리던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다음에는 윤 장관이 정말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사장단을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면 묻지 않아도 기업들이 먼저 ‘덕분에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워할 것이다.

장원재·산업부 peacechaos@donga.com
#기업#투자#고용#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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