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반대 안한다’ 1973년 6·23선언… 박정희 대통령 발표前 김일성에 내용 알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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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입수 英외교문서 통해 드러나… ‘北 즉각 5대강령 맞불’ 비밀 풀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1973년 6·23 특별선언을 발표하기 전 북한 측에 주요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2일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 발표 직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조국 통일 5대 강령’ 선언을 들고 나오며 맞대응할 수 있었던 역사의 비밀이 풀린 것이다.

미국의 냉전사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가 최근 영국 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미국 측이 1979년 6월 남-북-미 3자회담 제의를 발표하기 전 북측에 미리 알려 주자고 제안하자 1973년 ‘상처받은 경험’을 들어 강력하게 반대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3년에 ‘합리적인 일련의 제안들’을 북측에 미리 알려 줬지만 그들(북측)은 명백하게 잘 준비된 선전 공세로 이를 끌어내리려고만 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1973년 6월 23일 오전 10시 7개항의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대통령 특별성명’을 발표하자 김 주석은 이날 오후 기다렸다는 듯 체코 공산당 구스타프 후사크 총비서를 환영하는 평양 군중대회 연설에서 ‘조국 통일 5대 강령’을 발표했다.

당시 강령은 허담 외상이 1971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4기 5차회의에서 보고한 ‘통일 8개항’을 단순화한 것. 하지만 연방제에 ‘고려’라는 국호를 추가하고 ‘단일 국호에 의한 유엔 가입’ 주장을 넣었다. 남측의 사전 통지를 받고 이를 반박하기 위해 급조한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퍼슨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프로젝트 책임자(역사학 박사)는 “박 정권이 19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 사실도 사전에 알려 주는 등 중요 내정을 미리 알려 주면서까지 북측에 공을 들였지만 북측은 이미 박 대통령의 대화 공세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사료”라고 해석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는 영국 외교부가 1979년 남-북-미 3자회담 개최를 둘러싼 주변국 동향을 탐문하기 위해 미 국무부 로버트 리치 한국과장과 전화 통화를 한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 북한대학원대는 이 문서 등 새로 발굴된 1976∼79년 북한 외교문서를 놓고 3, 4일 워싱턴에서 비공개 한미 학술세미나를 연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유엔#남북한 가입#박정희#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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