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경제체계 도입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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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쟁 허용-의무고용 폐지’ 파격… 특권층 반발이 변수

《 북한이 전국적인 도입을 결정한 신경제체계는 북한 경제체제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혁명적 발상이다. 김정일 정권 시절인 2002년 북한이 실시한 7·1조치는 북한 반(反)개혁세력의 저항으로 3년도 안 돼 좌초했다. 이번 신경제체계의 미래도 쉽게 장담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시장경제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경제체계는 7·1조치에 비해 내용에서 훨씬 파격적이기 때문에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인다. 》  
○ 신경제체계의 내용과 의미

신경제체계는 기업경영에서 국가의 계획과 통제를 최대한 배격하고 획기적인 자율성을 인정한 것이 핵심이다.

생산자재 및 수단을 자율적으로 시장에서 해결하라고 요구한 것은 기업들에 대해 알아서 생존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7·1조치는 국가가 개설한 ‘사회주의 물자공급시장’에서 공장 기업소가 거래하도록 했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기업이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원자재를 요구하는 기업도 없었다. 또 기업 운영으로 창출되는 이윤이 종업원들에게 돌아가지 않아 생산 재개에 적극적인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기업이 멈춰서야 여유 시간을 활용해 장사에 뛰어들 수 있어 종업원들은 가동 중단을 원하는 게 현실이었다.

신경제체계는 생산과 가격 책정 권한까지 기업과 시장에 일임함으로써 종업원들이 소속 공장의 가동에 이해관계를 갖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기업이 창출하는 수익이 장사 수익보다 많아야 근로자들이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북한의 기업들은 경영으로 창출한 이익의 일부분만 국가에 세금 형태로 낼 것으로 보인다.

각 공장 기업소가 생산제품을 시장의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필요할 경우 업종 전환까지 허용한 조치는 신경제체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상품시장의 사실상 90% 이상을 중국 제품이 점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북한 공장 기업소가 살아남으려면 중국산과 경쟁을 해야 하지만 기계 화학 섬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생산경쟁력이나 원가가 중국산에 뒤지는 게 현실이다. 북한은 기업 자율성 부여로 소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상품 생산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 조치는 기업 경영에 시장의 경쟁체제를 허용함으로써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첫걸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각 기업에 불필요한 근로자에 대한 구조조정 권한을 준 것도 북한 사상 최초의 일이다. 북한은 국가의 의무고용 보장을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으로 선전해왔다. 하지만 대다수 공장 기업소가 생산을 중단하면서 의무고용의 폐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고용자는 몇만 명인데 사실상 가동이 중단된 기업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가동 중단 기업의 노동자들은 생활총화 같은 조직생활만 직장에서 하고, 도로 건설 등 비생산적 활동에 동원됐다.

임금 자율화는 7·1조치에서 근로자의 인센티브를 보장해 준 것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외화계좌의 허용으로 특권층 극소수가 각종 이권을 독점해온 해외 무역 권한을 각 기업에 나눠주려는 움직임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 신경제체계의 미래와 과제는

신경제체계가 안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시장경제 이해 및 경험 부족으로 비슷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난무할 가능성도 크다. 또 바닥에 떨어진 대외신용도, 통제에 따른 시장 위축, 원자재 공급처 확보, 내수 구매력 제고 등 하나하나가 신경제체계의 성패와 직결되는 난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02년 7·1조치가 나오던 때보다 신경제체계가 많은 점에서 긍정적이다. 우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파탄에 빠진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4월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공식 선포했다. 김정은은 노동당 행정부에 경제발전전략을 연구하는 ‘전략문제연구소’를 신설하고 직접 챙겼다. 지난해 6월 28일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발표하고 산업과 농업의 개혁을 기정사실화했다. 이후 전국에 300여 개의 신경제체계 시범단위가 만들어져 1년간 가동됐다. 신경제체계의 실행 사령탑이 대표적 경제개혁파인 박봉주 총리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박 총리는 2002년 7·1조치의 주도자로 알려졌지만 수구세력의 반발로 좌천됐다가 올 4월 총리로 재기용됐다. 그는 누구보다도 경제개혁 현장의 실정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1조치를 좌초시켰던 군부 등 북한의 수구세력이 김정은 시대에서 대폭 물갈이되면서 크게 위축된 것도 안정적 개혁 조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살아남은 수구세력도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언제 좌천될지 몰라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피하고 있다.

국내외 여론이 경제개혁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는 것도 10년 전과 달라진 환경이다. 또 사실상의 가족영농제 도입으로 평가되는 농업개혁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당분간 북한에선 개혁이 시대의 화두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6·25전쟁 이후 가장 획기적인 조치로 볼 수 있지만 물자 부족과 원자재 조달시장의 미비로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신경제체제#북한 시장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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