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고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의사결정의 병목현상에 걸린 민주통합당 문 위원장의 처지를 당 관계자는 28일 이렇게 묘사했다. 삼각파도란 △‘방송 장악’이라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당 안팎 강경파의 눈치 △당 쇄신 책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민주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중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정책 업무 상당 부분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옮기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특히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날부터 방통위 업무의 미래부 이관에 대해 ‘방송의 공정성, 중립성 훼손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태도에는 지난해 대선 패배의 주요한 원인이 방송을 우군화하지 못한 데 있었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이날 국회를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정부의 방송 장악 의도라니) 개명 천지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하자, 문 위원장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방송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방송 장악’ 트라우마는 당 안팎 강경파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대화가 안 되는 협상 파트너”라는 평을 들으며 ‘악역’을 맡고 있는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도 당내 의견 조율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정도다. 전날 민주당은 골프, 바둑, 오락채널 같은 방송의 공익성 및 공정성과 관련이 적은 비(非)보도 부문의 채널사업자(PP) 업무를 방통위에서 미래부로 이관할 수도 있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우 수석부대표가 이 ‘양보안’을 새누리당에 제시하겠다고 하자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이 “대선에서 오락채널인 ‘tvN’이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느냐”며 “비보도 부문도 절대 이관할 수 없다”고 저항했다는 후문이다.
강경파는 소수라고 해도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 당내의 시각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해주자’는 생각을 지닌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민주당이 물러설 경우 좌파 진영의 눈총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패배 후 혼란에 빠진 당을 수습해야 하는 책무가 겹쳐진 것이다. 이미 전당대회 개최 일정과 방식, 그리고 지도부 경선 규칙을 놓고 문 위원장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비대위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마련한 안을 정치혁신위원회가 반대하는 파행이 벌어졌고, 당내 주류-비주류의 기 싸움이 세지면서 당이 혼란에 빠지기 직전까지 갔다. 전날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친노(친노무현)·범주류의 의견을 일부 수용함으로써 간신히 파국을 면하긴 했다.
이 같은 이유로 문 위원장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에 대한 전권을 사실상 박기춘 원내대표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이제는 문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결단을 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당 일각에서 나온다. 그가 처한 삼각파도가 거세긴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을 제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선 그가 진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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