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탁회의 제안” 내세웠지만… ‘李-朴 투톱’은 이해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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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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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카드에 민주당 내분

다른 시선… 다른 생각? 민주통합당이 26일 국회에서 민생공약실천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총선공약 이행 방안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문재인 좋은일자리본부장, 김한길 보편적복지본부장, 이해찬 한반도평화본부장, 문성근 특위위원장, 이용섭 정책위의장, 정세균 경제민주화본부장, 박지원 민생안정본부장.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다른 시선… 다른 생각? 민주통합당이 26일 국회에서 민생공약실천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총선공약 이행 방안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문재인 좋은일자리본부장, 김한길 보편적복지본부장, 이해찬 한반도평화본부장, 문성근 특위위원장, 이용섭 정책위의장, 정세균 경제민주화본부장, 박지원 민생안정본부장.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민주통합당이 일촉즉발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원내대표 및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친노(친노무현)그룹 핵심인 이해찬 상임고문과 호남 좌장 격인 박지원 최고위원이 각각 당대표와 원내대표로 역할을 나눠 맡기로 합의한 사실이 26일 당 분란의 촉매제가 됐다.

야권에 일이 있을 때마다 ‘해결사’로 나섰던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도 구설에 올랐다. 박 최고위원에게 원내대표 출마를 제안한 것이 원탁회의의 공식 입장이냐를 둘러싼 진위 공방까지 벌어지면서 당은 이날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 ‘원탁회의의 뜻’은 거짓?


박 최고위원은 원내대표 후보등록 마감일인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원탁회의 원로 등이 정권교체를 위해 행동하라고 말씀했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해찬 고문을 두 차례 만난 25일 원탁회의 멤버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도 전화를 받았다. ‘지금처럼 친노와 비노(비노무현)가 싸우는 형태로 당이 운영돼선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 이 고문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협력해야 한다’는 얘기였다”며 “원탁회의의 제안이어서 뿌리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최고위원 측 관계자는 “백 교수의 제안이니 원로회의의 공식 제안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실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의 틀을 만든 것은 이 고문이다. 그는 지난 주말부터 백 교수와 김상근 목사 등 원탁회의 일부 멤버, 권노갑 상임고문과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에게 운을 띄웠고 이들은 대부분 “좋은 아이디어”란 반응을 보였다는 것. 이 때문에 애초엔 원탁회의가 ‘박지원 원내대표 카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이 고문과 박 최고위원이 원탁회의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담합’의 정당성을 내세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원탁회의 멤버인 박재승 변호사는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원탁회의 제안설은 말이 안 된다. 원탁회의 차원에서 논의된 적이 없다”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해찬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구상은 ‘이해찬 기획, 원탁회의 일부 멤버 동의’라는 게 진실에 가깝다.

원탁회의는 지난해 7월 백 교수, 김 목사, 함세웅 신부 등 야권의 원로급 인사 21명이 ‘2012년 선거에서 이겨 2013년에 정권을 교체하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다. 이해찬 문재인 상임고문도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이, 문 고문은 ‘혁신과통합’을 만들어 지난해 12월 민주통합당 창당에 참여했다. 원탁회의가 민주당에 큰 영향력을 가지는 이유다.

원탁회의는 2010년 6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진보진영 곽노현·박명기 후보 간 단일화를 중재했다. 4·11총선 때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서울 관악을 여론조사 경선 조작사건으로 야권연대가 위기에 처하자 이 공동대표의 사퇴를 유도했다. 야권연대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는 민주당과 통진당을 동시에 압박해 연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내에선 원탁회의가 범야권의 단합에 나서는 것은 무방하지만 사실상 당내 파워게임인 당대표-원내대표 경선에 개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수도권 3선 의원은 “원탁회의나 혁신과통합이 당내 계파 모임이 돼 가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 김한길 “담합은 구태정치”


친노그룹은 ‘이해찬-박지원 투톱 구상’에 대해 “친노-비노 대결 프레임을 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지만 당내에선 “총선 패배 수습책이 고작 계파 간 담합이냐”란 비판이 쏟아졌다.

‘담합’의 충격은 이날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민생공약실천특별위원회 첫 회의에서도 드러났다. 박 최고위원과 이해찬 문재인 상임고문 등 담합의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참석한 탓인지 회의는 시종 냉랭한 분위기였다. 당대표 경선을 준비 중인 김한길 당선자는 “패권적 발상에서 비롯된 담합으로 과연 우리가 대선에서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트위터에도 “두 사람의 담합은 우리가 벗어 던져야 할 구태정치”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 고문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대동단결해 정권교체를 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문 고문도 “두 분이 손잡는 것을 담합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담합이 아니고 단합”이라고 강조했다.

○ 경선후보-대선주자들도 “불쾌”

원내대표 경선에 뛰어든 이낙연 의원은 “특정 대선 후보가 관여한 담합이어서 그 체제가 대선 후보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한다”며 문 고문을 겨냥했다. 전병헌 의원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2인자 역할을 했던 두 사람은 정권의 그림자도 승계했다. 그림자 2개가 모이면 어둠”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당내 재야 출신이 주축이 된 ‘진보개혁모임’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유인태 당선자를 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반면 박지원계인 박기춘 의원은 경선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 고문이 공공연히 문 고문을 대선주자로 밀고 있다는 점에서 정동영 정세균 손학규 상임고문 등 다른 대선주자 진영에선 “대선주자까지 정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으로 바짝 긴장했다. 손학규계인 신학용 의원은 “무늬만 경선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당내에선 원내대표 경선 무용론마저 나온다. 19대 총선 당선자 127명만을 대상으로 하는 투표인만큼 최대 계파인 친노그룹과 호남세력이 손을 잡을 경우 결과는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친노그룹은 친노직계와 정세균계, 시민사회 출신 등을 포함해 40여 명이고 호남지역 당선자(27명)와 옛 민주계 및 박지원계를 합치면 역시 40여 명이어서 두 세력이 합치면 절대 다수가 된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민주통합당#이해찬#박지원#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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