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작년 미술품 28억어치 구입…가치는 제대로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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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6일 20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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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부 부처 사무실 외벽에 걸려 있는 산수화.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한 정부 부처 사무실 외벽에 걸려 있는 산수화.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大道無門(대도무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좌우명인 이 휘호는 '큰 길에는 문이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해 이 휘호와 함께 '신한국창조(新韓國創造) '역사바로세우기' 등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쓴 3개 서예품을 모두 100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신한국창조와 역사바로세우기 휘호는 김 전 대통령이 문민정부 시절 내걸었던 역사적인 슬로건이어서 소장 가치가 높다는 것이 미술계의 평가다.

16일 동아일보가 조달청 등으로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는 총 28억 원어치 미술품을 구입했다. 부처별로는 △보건복지부 11억9781만 원 △대법원 7억7172만 원 △대통령실 5억2930만 원 △문화체육관광부 4억1300만 원 등 순으로 미술품 보유 액수가 늘었다. 이 중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 청사를 지은 보건복지가족부와 서울북부지법 청사를 세운 대법원은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조각 등 장식품을 설치하면서 구입액수가 커졌다.

국회 사무처에서는 지난해 김석종 사진작가의 사진을 7점 구입해 각 정당의 대표실에 걸었지만 의석 수에 비례해 사진의 크기와 가격도 차이가 있었다. 한나라당에 걸린 사진은 400만 원, 창조한국당과 자유선진당 300만 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미래희망연대당, 민주당 등 4개 정당은 사이즈가 작은 200만 원짜리였다.

각 부처에서 소장 중인 미술품은 총 529억 원에 달하지만 부처별로 편중 현상이 심하다. 부처별로 △외교통상부 101억 원 △대법원 93억 원 △교육과학기술부 65억 원 △청와대 53억 원 △대검찰청 45억 원 등 순으로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여성가족부(310만 원), 고용노동부 18점(2460만 원), 농림수산식품부 19점(1504만 원), 환경부 7점(1655만 원) 등 부처들은 변변찮은 그림 하나 없는 상태다.

각 부처마다 미술품의 가치에 대한 인식도 다르고 정해진 예산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그림 구입에 대한 지침이 없어 관심이 있는 기관장 등이 새로 와서 필요하다고 하면 자산 취득비에서 그림을 구입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정부의 미술품 구입액이 적어 불만이 많다.

하지만 정부 미술품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다. 정부 미술품 관리청인 조달청의 '사이버갤러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50만 원 이상 정부 미술품들이 공개돼 있지만 가짜 그림이 버젓히 올라와 있을 정도. 이곳에는 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 화백의 '닭6마리'를 전라남도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갖고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전남 선관위 관계자는 "2007년 즈음에 구입한 복제품으로 가격은 20만 원"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서울동부지검에서 유명화가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을 갖고 있다고 나와 있지만 복제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림을 보유한 기관 중 일반인이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기관도 없다. 국무총리실 미술품 중 가장 고가인 이상범 화백의 '설경'(2억 원)과 변관식의 '산수'(1억 원)는 모두 청사가 아닌 총리공관에 걸려 있다. 법무부는 5000만 원짜리 이상범의 '산수화'를 운영지원과 사무실에 걸어뒀다.

또 재정부에서는 1800만 원짜리 그림(이마동의 '무제')을 그간 창고에 쌓아뒀다가 최근 감정 평가 결과 가치가 높다는 걸 알고 장관 집무실에 걸어 놨다. 또 재정부에서는 2005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연인이던 신정아를 통해 정부예산으로 구입한 800만 원, 1200만 원짜리 그림이 계속해서 구설수에 오르자 각각 일반인이 거의 없는 청사 지하 도서관과 운영지원과에 걸어뒀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회화과)는 "정부가 미술품 보유를 늘리고 관리시스템도 정비를 해야 미술계와 정부 모두 윈-윈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미술품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정부에 많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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