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외환 빗장 열어놓은 한국, 속옷만 입고 있다간 독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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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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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 ‘외화유동성 위기’ 또 올까?

심각한 李대통령 8일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 열린 청와대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심각한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등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심각한 李대통령 8일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 열린 청와대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심각한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등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두 외화유동성 위기가 우리 경제의 숨통을 쥐고 흔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환위기는 국내 대기업의 무리한 차입경영,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단기외채 문제로 인해 환율 폭등, 실물경제 침체 등 후유증을 톡톡히 겪어야 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정부는 “이번만은 다르다”고 자신만만해한다.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고수준에 있고, 단기외채 비중도 크게 감소하는 등 우리나라의 외채 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냥 안심해서는 안 될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 스스로 총외채 저항선을 4000억 달러로 설정한 상황에서 6월 말 기준 총외채가 3963억 달러에 이르러 마지노선까지 불과 37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 정부 “과거와 다르다”


정부가 외화유동성 상황을 자신만만해하는 근거는 다름 아닌 개선된 지표다. 외환보유액, 외채구조, 경상수지 등 모든 지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좋아졌다는 것이다. 총외채 규모는 6월 말 기준 3963억 달러로 위기 당시 3651억 달러(2008년 9월 말 기준)에 비해 늘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기획재정부 최종구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단기외채가 많이 줄어드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경제 여건을 비교해도 지금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경제가 지속성장한 점도 반영됐다. 2008년 1∼8월 경상수지는 31억 달러 적자였지만 2009년에는 328억 달러, 2010년에는 282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국가채무비율은 3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02.4%에 비해 상당히 양호하다.

증시, 채권시장의 외국인 투자 현황도 안정적이다. 외국인은 7월 말 현재 국내 주식 399조2587억 원, 채권 84조2242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 투자액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일부가 빠져나가도 3100억 달러에 이르는 정부 외환보유액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 차관보는 “최근 외국인들의 채권 투자 규모가 확대됐다”며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채권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공통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 “위기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터진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하다. 1997년에도, 2008년에도 정부는 항상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고 했지만 유동성 위기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터졌다.

1997년에는 가용 외환보유액과 단기외채비율을 과소평가하고 환율 방어를 위해 무리하게 실탄을 쓰다 외환위기를 키웠다. 2008년엔 과도한 낙관론이 위기의 불씨가 됐다. 정부는 당시 위기설과 시장심리 악화를 한 방에 잠재우겠다며 10억 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에 나섰다 미국 현지에서 ‘한국 정부는 달러가 급하다’는 오해만 샀다. 달러와 원화를 맞교환하는 ‘한미 통화스와프’ 약정이 없었다면 자칫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31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과연 충분한지에 대한 논란도 새삼 불거지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공식적으로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3000억 달러+α’를 적정 수준으로 삼고 있는 분위기다. 재정부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외환보유액 과다 보유 논란이 제기됐는데, 이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로서 치러야 할 비용이고 구제금융을 받은 전력을 감안하면 더욱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단기외채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 외화유동성 특별점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시중은행에 비상시 외화자금 조달 계획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재정부가 7월 29일 6개 국내 주요 은행 및 3개 외국계 은행 고위 관계자들을 불러 단기외채 증가에 대한 정부 우려를 전달하고 김치본드(외화표시채권) 발행 자제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빗장 열려면 기준 엄격해야”

정부가 총외채 4000억 달러 초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건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대외 개방 측면에서 중국은 건장한 청년이 따뜻한 외투를 입고 있다면 우리는 감기에 잘 걸리는 아이가 속옷만 입은 채 나돌아 다니는 격”이라는 비유를 했다. 과도하게 개방돼 있는 우리 경제 체질상 외채가 불어나면 언제라도 위기는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은행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절대 믿지 말라. 내가 세 번이나 속았다”고 경고한 것도 비슷한 위기의식의 공유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열어놓은 빗장을 닫기 힘들다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엄격하고 완고한 외채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속았다고 말한 건 감독당국이 제대로 파악을 못했다는 고백”이라며 “자산과 부채 간 불일치나 외화 흐름 등을 다시 점검하고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외환보유액은 그런대로 쌓아놨다지만 부채구조를 세심하게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은행권 외화 부채에 대한 안전조치 강화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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