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의 입지 선정 문제를 둘러싸고 여권이 내홍을 겪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19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당내 논란이 될 수 있으니 언급을 자제하라”고 다른 최고위원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정두언 최고위원은 곧장 기자실로 내려와 ‘입지선정 원점 재검토’ 발언을 한 임기철 대통령과학기술비서관의 문책을 요구했다.
○ 자제 안 되는 과학벨트 논란
정 최고위원은 “과학벨트 논란은 대통령과학기술비서관이 ‘대통령 공약사항을 지킬 필요가 없는 여건’이라고 해 촉발됐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게 얼마나 큰 문제냐. 한나라당과 충청권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발언을 한 이 사람을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비서관은 6일 대덕특구를 방문해 기자들에게 “과학벨트 후보지는 전국을 대상으로 선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과 달라진 측면이 있고 지금은 공약사항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약에 얽매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19일 최고중진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홍준표 최고위원은 “당의 권한도 아닌 것을 감 놔라, 팥 놔라 해서 나중에 정치적 갈등만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 최고위원은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대선 공약”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경기 고양시(일산서구)가 지역구인 김영선 의원은 과학벨트 경기 북부 입지론을 주장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당초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대전에서 열려다 장소를 바꾼 것도 과학벨트 입지 선정 문제가 정리되지 못한 채 대전에 가봐야 욕만 먹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 당청 갈등과 지역 갈등 뒤섞여
지난해 12월 8일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직권상정해 통과시키면서 ‘끼워넣기’ 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법에선 입지 선정을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위원회에서 하도록 돼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대구경북(TK)이나 전남·광주에 과학벨트를 주는 것보다 충청권에 주는 게 내년 총선과 대선의 득표 전략에 유리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TK나 호남엔 과학벨트를 주나 안 주나 표를 얻고 잃는 데 별 영향이 없다는 논리다. 정 최고위원은 최근 사석에서 “결국 (충청권에) 줄 수밖에 없는데 기분 나쁘게 주면 (충청권 주민들이)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고도 고맙다는 소리도 못 듣는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나 청와대는 태도가 다르다. 법률에 입지가 못 박혀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정부가 법에 따라 적절한 곳을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17일 열린 재경대구경북시도민회 신년인사회에서 “(과학벨트 입지는) 법에 따라 선정하면 되는 것이다. 당에서 결정하는 사안이 아니라 정부 사안이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에서도 “무조건 충청권에 간다는 건 어렵다”는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과학벨트는 당이 국정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 총선과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느냐, 청와대 및 정부가 권한을 지키며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막느냐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평했다.
또 하나의 갈등 지점은 지역 문제다. 서상기 의원(대구 북을) 등 TK 지역 의원들은 ‘당연히 입지 선정을 공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도권의 정두언 나경원 최고위원과 충청권의 박성효 최고위원은 “굳이 과학벨트를 ‘제2의 세종시’로 만들어 표를 갉아먹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맞서고 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
연구개발단지, 교육단지, 지식산업단지를 모아 기초과학과 비즈니스를 융합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한 대단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충남도에 관한 공약 중 하나다. 정부는 2015년까지 3조5487억 원을 투입해 벨트를 조성하고 2029년까지 212조7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얻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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