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靑 ‘정동기 충돌’]MB 침묵속 당청 수뇌부 “더는 분란 안된다” 수습 모드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2일 03시 00분


■ 대통령은 이틀째 말이 없고… 靑 “기다려보자” 분위기

한나라당으로부터 자진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가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정부법무공단으로 출근해 기자들과 만나 얘기하고 있다.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나라당으로부터 자진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가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정부법무공단으로 출근해 기자들과 만나 얘기하고 있다.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의 거취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굳은 침묵’이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후속조치 보고대회 일정을 소화했으나 정 내정자와 관련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정 내정자도 자신에게 쏠린 세간의 부담스러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11일로 예상됐던 자진사퇴 의사 표명을 미뤘다. 정 내정자는 이날 오후 6시 15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별관의 내정자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길에 기자들로부터 ‘19, 20일로 예정된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하룻밤 더 생각해 보겠다, 내가 결정할 일”이라고 답해 이르면 12일 사퇴 여부를 밝히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 내정자 거취와 관련해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이 대통령이 분명한 뜻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 내정자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 대통령의 침묵에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집권 4년차를 맞은 이 대통령의 머릿속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온통 국가선진화 과제, 국운융성 방안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전언이다. 그런데 새로운 출발을 위해 지난해 12월 31일 감사원장을 포함해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으나 새해 초부터 인사 문제로 시끄러워지고 급기야 당청이 충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입을 닫아 버렸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 내정자가 사의를 표명할지에 대해 “그건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면서 “사퇴 표명을 하느냐 마느냐는 1차원적인 문제다. 청와대는 훨씬 복잡한 변수까지 고려해 3차원, 4차원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무엇보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노골화할 가능성이 높은 당청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천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도 없다고 공언해 왔지만 정치 현실은 자신의 뜻과는 달리 냉혹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 내정자 인사파동이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인사라인의 책임 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당청 간 물밑 조율을 통한 수습 방안 도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 대통령의 침묵에는 정 내정자에게 최소한의 ‘신의’를 보여주겠다는 특유의 ‘온정주의’도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퇴 기자회견을 열기 전까지 여러 차례 정 전 총리를 직접 만나면서도 총리를 교체하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직접적인 언질은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자신이 정 내정자를 내치는 게 아니라 정 내정자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도록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한나라는 하루새 말 다르고… 의사결정과정 내홍 휩싸여

한나라당이 내홍에 휩싸였다. 안상수 대표가 10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의 자진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했지만 곧바로 역풍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11일 새벽 급히 귀국한 김무성 원내대표는 당의 의사결정 방식과 관련해 안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전날 최고위원회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명한 것은 최고위원회의가 끝날 무렵에 원희목 대표 비서실장에게서 ‘이렇게 결정되어가고 있다’는 통보를 받았지 (원 실장이) 내게 동의를 구한 적도,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청문회는) 업무분장에 있어 원내대표가 할 일”이라며 “당정청이 한식구라면 예의를 밟아 신중히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고, 당청 갈등으로 가선 안 되는 만큼 자중자애해야 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거사’를 주도한 안 대표 측은 몸을 낮추는 모습이었다. 원 비서실장은 ‘최고위원회의 결정에 동의한 적 없다’는 김 원내대표의 비판에 대해 “10일 최고위원회의 중 김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최고위원들의 (정 내정자 자진 사퇴 촉구) 의견을 전했고 ‘알았다’는 답변을 들은 게 맞다”고 물러섰다. 안 대표는 이날 김 원내대표와 오찬을 함께하며 전날 최고위원회의 결정 이후 수습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대표는 이날 신년기자회견 연설문에 있던 ‘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고 보완해나가겠다’는 문구를 회견 1시간 전에 급하게 삭제했다. 최종 연설문에서 이 문구를 뺀 이유를 묻자 “당정청이 협의해서 잘해나갈 것”이라고만 답변했다. 청와대 인사책임자에 대한 문책이 필요하냐는 질문에도 “문책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 대표의 핵심 측근은 “안 대표는 당초 10일 최고위원회의 이후 2, 3일 여론 추이를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서병수 최고위원 등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며 “문제가 더 악화되면 대통령, 나아가 여권 전체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내대표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정진석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긴급 회동해 ‘공연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자’는 데 합의했다고 여권 관계자가 전했다. 정 수석은 ‘국민이 보기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자’는 뜻을 김 원내대표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면충돌 양상을 띤 당청 관계가 수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전날 최고위원회의 전에 안 대표와 통화한 것을 놓고 당 안팎에서 정 내정자 거취를 놓고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권력투쟁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자 이 장관은 “근거 없는 음모”라고 일축했다. 이 장관 측은 “정 내정자 거취 문제에 대한 사전논의는 전혀 없었다. 이 장관은 오히려 안 대표를 말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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