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퇴 공세의 선봉에 섰던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정 후보자가 총리 지명을 받은 이후 줄곧 "괴롭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정 후보자의 낙마를 목표로 설정한 제1야당의 원내대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는 1994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조순 씨 영입 작업을 진행하다 조 전 시장의 애제자인 정 후보자와 인연을 맺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성공적인 정계복귀를 위해 경제학자이던 조 전 시장의 출마를 도모한 이 원내대표는 선거 직전까지 거의 매일 정 후보자와 머리를 맞대고 선거 전략을 논의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초기 정 후보자에게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자리를 제안한 것도 당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던 이 원내대표였다. 이 원내대표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재학 시절엔 정 후보자에게 경제학 수업을 듣기도 했다.
이런 오랜 인연 탓에 이 원내대표는 9·3 개각 당시 정 후보자가 총리 지명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이 너무 커서 뭐라 말할 수 없다"며 몹시 착잡해했다. 개각 직전까지 스스럼없이 어울렸던 탓에 "전혀 몰랐는데…"라며 '깜짝 입각'에 대한 서운함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이 정 후보자의 각종 의혹을 파헤친 청문회 첫날인 21일 밤 이 원내대표는 청문회장으로 정 후보자를 직접 찾아가 "개인적으로는 미안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을 건넸고, 이에 정 후보자는 "공적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21, 22일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서울대 교수 시절 한 기업체 사장으로부터 1000만 원을 '용돈'으로 받아 쓴 정 후보자를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하자 이 원내대표는 각종 회의에서 "상처투성이인 채로 총리가 되면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며 정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정 후보자의 인준 표결처리 강행이 예고된 28일 오전엔 "자진사퇴 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며 "이제는 정 후보자 문제에서 '졸업'하고 싶다"고 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