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프고 아쉽다” 조문행렬… 정치권 모든 일정 중단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6분



오열하는 이희호 여사47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자이자 민주화 동지였던 이희호 여사가 1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빈소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오열하는 이희호 여사
47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자이자 민주화 동지였던 이희호 여사가 1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빈소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3분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은 “위대한 지도자와 스승을 잃었다”며 한마음으로 애도했다. 각계 인사는 임시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민주 “세계인 존경 받던 분… 슬픔 피할 길 없어”
한나라 “한국정치 큰 별” YS “거목이 쓰러졌다”
입원 며칠전까지 일기 써… “유언 있는지 볼 것”

김 전 대통령과 오랜 민주화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오래 전 동지이자 오랜 경쟁자의 서거에 정말 가슴이 아프다”며 “큰 거목이 쓰러졌다. 정말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과는 평생을 같이 환호하기도, 경쟁하기도 하고 그렇게 40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위로하면서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 평화에 평생을 바치신 분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던 분이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정 대표는 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과 아픔을 피할 길이 없다”며 “민주당에는 2009년이 너무 힘든 해”라고 침통해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거목이 쓰러졌다”며 “현대 정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다. 진심으로 애도하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영상취재=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이날 오후 9시경 아들 노건호 씨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권 여사는 기자들에게 “너무나 애통하고 슬픈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권 여사는 이 여사에게 “겹쳐서 슬픈 일이 일어났다”며 “(이 여사가) 흔들리지 마시고 오래 사셔야 한다. 강해지셔야 한다”고 위로했다. 이에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멀리서 오신 것을 알면 대단히 기뻐하셨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김 전 대통령 측 최경환 비서관은 “울음이 그치지 않아 말씀을 나누기 어려웠다”고 대화 분위기를 전했다. 권 여사는 10여 분 뒤 눈시울을 붉히며 빈소를 나왔고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더는 언급하지 않고 곧장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향했다.
이 밖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형오 국회의장과 문희상 국회부의장,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와 송영길 박주선 추미애 박선숙 의원, 손학규 전 대표, 한나라당 원희룡 심재철 의원, 무소속 정동영 의원, 고건 이해찬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별보좌관,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등이 빈소를 방문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빈소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은 병석에서도 우리 사회의 화해를 이루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유족과 잘 상의해 예우를 갖추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20분부터 정정길 대통령실장, 맹형규 정무수석비서관 등과 함께 상황 점검 회의를 가졌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19일 빈소를 방문하기로 했다.
국회는 김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김형오 국회의장 주재로 긴급 국회 기관장 회의를 열어 국회 의사당에 대형 근조 현수막을 게시하기로 했다. 또 국회 안에 분향소를 차리고 국회 본관의 국회기를 반으로 내려 조기(弔旗)를 다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국회 분향소엔 1964년 세계 최장 기록(5시간 19분)을 세운 김 전 대통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연설 등 의원 시절 의정 활동을 담은 기록물을 함께 전시하기로 했다. 김 의장 측은 “김 전 대통령이 6선의 국회의원(5, 6, 7, 8, 13, 14대 의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은 모든 정치일정을 중단했다. 민주당은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김 전 대통령까지 민주당이 배출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데 대해 망연자실했다. 민주당은 한 달 가까이 진행해온 미디어관계법 반대 장외투쟁과 각종 행사를 중단하고 서울 영등포 당사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해 장례와 관련된 대책과 일정, 지원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중앙당 및 시도당 각 지역위원회의 사무실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일반 시민들의 조문을 받기로 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은 고인의 뜻을 계승해 민주주의, 남북통일,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DJ를 따라 정치 역정을 함께해온 동교동계 인사들은 “정신적 주춧돌을 잃어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임종에는 김 전 대통령 가족 외에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민주당 의원과 한광옥 전 의원, 동교동 비서 출신인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전 의원, 그리고 안주섭 전 대통령경호실장 등이 함께했다. 이훈평 전 의원은 “편안하게 가셨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전국 시도 당사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플래카드를 걸기로 했다. 24일 대구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최고위원회의 등 모든 당 행사도 연기하기로 했다. 박희태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나라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한국 정치의 큰 별이었다”고 애도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동서가 화합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들도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서거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실 줄 몰랐다. 지난 수십 년간 파란 많은 정치 역정을 걸어왔는데 이제 천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란다.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유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고 전 전 대통령 측이 전했다. 전립샘암 수술을 받은 뒤 강원도 모처에서 요양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TV에서 서거 소식을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관지 수술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노 전 대통령은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고 문동희 비서관은 전했다. ‘DJP 연합’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고 한나라당 정진석 의원이 전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의원은 “책상이나 서랍에 유언장이 보관돼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입원 며칠 전까지 일기를 계속 쓴 만큼 일기에 유언을 남겼는지를 챙겨볼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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