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표” 외치다 ‘입사’하고나면 오너 눈치보기

  • 입력 2009년 5월 15일 02시 56분


■ 왜 ‘총무형’ 의원이 많을까

각자 상황따라 충성대상 달라져

MB 같은 ‘영업형’ 박근혜 같은 ‘주주형’

총무형에 비해 비중 적어

《3명 가운데 1명꼴인 109명(18대 국회의원 당선자 기준)이 서울대를 졸업했다. 법조인, 교수, 기업인, 관료 출신은 55명으로 5명 가운데 1명꼴이다. 18대 국회의원 각각의 면면을 보면 어느 조직보다 구성원의 ‘스펙(Spec·학력 등 외형적 조건)’이 쟁쟁하다. 그래서 국민은 더욱 의아해한다. 막말과 거센 몸싸움이 오간 ‘해머 국회’, 회기 종료를 눈앞에 두고 몰아치는 ‘자정 국회’…. 여의도로 보낸 ‘우리의 대표’들이 빚어내는 국회의 모습은 씁쓸한 촌극(寸劇)에 가깝다. 동아일보는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와 공동으로 조직원의 관점에서 국회의원을 바라봤다. 설문 분석 결과 국회의원은 대주주와 사장(계파 수장이나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이 있는 ‘주식회사 국회’에 다니면서 4년에 한 번씩 근무 평가를 받는 계약직 임원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고객(국민)에게 봉사하기에 앞서 자기 앞가림부터 해야 하는 또 다른 샐러리맨의 모습이었다.》

18대 국회의 주류는 ‘총무형’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은 조직을 이끄는 보스형이라기보다는 계파 수장의 뜻이나 조직의 논리를 잘 따르는 충실한 참모이자 행동대원의 색채가 강하다.

○ 대주주 속 뜻도 헤아리고, 고객 반응도 살펴야

총무형 정치인이 많다는 것은 눈치 보는 정치인이 많다는 뜻이다. 그 대상은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나 계파 수장일 수도 있고 지역구 주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를 치르고 난 후 정치 환경이 변하면서 충성의 대상은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표’ ‘1인 헌법기관’이 아니라 조직의 일원으로 접근한 것과 맥락이 닿아 있다. 국회의원의 행태가 대주주와 사장의 속뜻을 헤아려 일을 하고 고객의 반응도 살펴야 하는 기업 임원을 빼닮았다는 얘기다. 황 교수가 분석한 6가지 정치 리더십 스타일 유형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영업형에 속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괴짜형이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주주형,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홍보형으로 분류됐다.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는 기획형, 고건 전 국무총리는 총무형으로 분류된다.

○ 총무형은 고흥길, 영업형은 차명진 의원

18대 의원 중 대표적인 총무형은 미디어법을 상임위원회에 전격 상정한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다. 그는 총무형 성향이 50점 만점에 43.6점으로 응답한 의원 가운데 가장 높았다.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총무형의 전형인 셈이다. 영업형의 대표 인물은 이 유형에서 50점 만점에 44.2점을 받은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다. 그는 대변인 시절의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 백지화’, ‘수도권 규제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주주형의 대표 인물은 자유선진당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류근찬 의원(50점 만점에 36.3점)이다. 기획형의 대표 인물은 조진형 행정안전위원장(50점 만점에 33.5점)이고 홍보형의 대표 인물은 민주당 우윤근 의원(50점 만점에 37.5점)이다.

○ 여야, ‘임무’만 다를 뿐 차별화된 리더십 없어

여야의 정치 리더십은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민주당보다 총무형(14명>11명)이나 기획형(4명>2명)이,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영업형(8명>6명)과 홍보형(5명>3명)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양당 모두 총무형과 영업형이 대세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이는 정치 상황에 따른 여야의 임무가 다를 뿐 정치 행태나 조직운영 방식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10년 만에 여야가 바뀌어 서로 잘 이해할 것이라는 18대 국회 초의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각 정당이 차별화된 정치 리더십 스타일을 보이지 못하면 정치문화나 정치행태 측면에서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황 교수는 “국회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이 ‘여야가 똑같다’며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게 이 같은 사실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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