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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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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대변인은 10월 11일(현지 시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10월 1∼3일 북한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간에 핵검증 이행방안이 합의됐고, “미국이 추구했던 모든 요소가 이 핵검증 패키지에 포함됐다”는 이유에서라고 했다.
테러지원국 해제불구 비핵화 미결
앞으로 조만간 6자회담이 열리고 이번에 미-북 간에 합의한 북핵검증 이행방안을 추인하면서 ‘2·13합의’(2007년)에 따른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검증이행과 북핵 폐기를 위한 비핵화 3단계는 결국 미국의 차기 정부 몫으로 떠넘겨지게 됐다. 임기종료 3개월여를 남겨두고 있는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될지 아니면 차기 정부에 더 큰 짐을 지우는 실패작이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근본문제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된 북한이 ‘10·3 합의’ 정신대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고 과학적이고 신뢰할 만한 방법으로 모든 핵물질과 시설을 폐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대북 핵협상은 거의 북한이 선택하는 대로 끌려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미-북 간에 합의한 ‘검증 패키지안’도 핵 폐기 여부에 대한 북한의 자의적 선택권을 제거하지 못했고, 북핵 제거 전망도 불투명한 상태 그대로다.
우선 북한이 폐기해야 할 ‘모든 핵 프로그램’의 범위와 검증방법이 여전히 불분명하다. 북한은 ‘10·3 합의’ 범위 안에 있는 ‘신고된 시설’과 그 범위 밖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 플루토늄 보유량, 핵무기 등 ‘미신고 시설’을 구분했다.
‘신고된 시설’에 대해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검증방법에 협력하지만 ‘미신고 시설’은 상호동의하에서만 검증을 받는다는 방침을 취했고, 미국은 이런 입장을 받아들였다. 이는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 핵협상에서 보인 북한의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 동의 없이는 핵문제 해결의 핵심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북한은 미국의 핵문제도 함께 거론하는 입장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2일 “미국이 정치보상 의무이행을 끝내고 조-미 쌍방 사이 무력화(불능화) 단계에 부합하는 공정한 검증절차가 합의된 데 따라 불능화 작업을 재개키로 했다”며 무력화 대상에는 미국의 핵물질, 시설도 포함된다는 것을 시사했다. 즉, 북한은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 핵을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주장한다.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시각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북핵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또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북한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하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이다.
인권유린 등 범죄굴레 벗어나야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이 현실을 북한당국에 분명히 주지시켜야 하며, 중국이나 러시아는 대미 견제를 위한 외교·전략적 카드로 북핵문제를 활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한편, 북한은 이번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조치를 계기로 미신고시설을 포함한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해 성실하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된다고 해서 납치, 인권유린, 마약밀매, 위폐제조 등 각종 국제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며,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적극 협력하여 국제적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살길임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협력관계 강화는 한반도 평화는 물론 핵 비확산체제의 확립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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