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李당선자 만찬 회동

  • 입력 2007년 12월 29일 0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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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중간과정 없이 임기 5년 지루해”

李당선자 “어려운 시기였으니… 변화무쌍”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 회동에서 마주 앉았다.

2005년 10월 1일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당선자가 청계천 개통 행사에 노 대통령을 초청해 만난 이후 처음이다.

오후 6시 반 시작된 만찬은 2시간 10분 만인 오후 8시 40분에 끝났다. 이 자리에서 북핵 문제와 ‘BBK 특검법’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만찬 메뉴는 맑은 탕과 밥, 전복술찜, 홍삼죽, 삼색전, 살치살구이, 과일, 와인이 곁들여졌다.

청와대에선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과 천호선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이, 이 당선자 측에서는 임태희 당선자 비서실장과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이 각각 배석했다.

○ 형님 먼저, 아우 먼저…회동 이모저모

노 대통령은 오후 6시 29분 청와대 본관 1층 현관 안쪽에 선 채 이 당선자를 기다렸다. 1분 뒤인 오후 6시 반 이 당선자를 태운 차량이 청와대 본관 현관 앞에 도착했다. 차량은 이 당선자가 대선 기간 내내 타고 다니던 검은색 카니발 승합차였다. 이 당선자가 차량에서 내리자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 비서실장이 그를 맞이하며 노 대통령에게 안내했다. 가벼운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붉은색 카펫이 깔린 본관 중앙 계단을 통해 만찬장인 2층 백악실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눴다.

▽노=차가 아주 특별하게 생겼다.

▽이=여사님(권양숙 여사)은 잘 계시죠? 인상이 아주 좋으시고….

▽노=조만간 내외분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만나는 기회를 갖도록 하자.

만찬장인 백악실에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오늘은 업무상 만남이고. 내 마음에는 당선자께서 나보다 더 윗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아이고, 무슨 말씀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근데 의전은 아직 제가 가운데로 돼 있나 보다. 다음에 퇴임 후에 (청와대에) 오는 일이 있으면 제가 그 자리에….

▽이=임기가 다해도 선임자시니까 제가 선임자 우대하겠다.

○ 노 대통령 “임기 5년 좀 길게 느껴져”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 5년에 대해 “좀 길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당선자에게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조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노=당선자 시절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이전도 힘들고, 이후도 힘들고. 지금도 사진을 보면 그때(당선자 시절)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이=(당선자 시절은) 책임이 아무래도 덜하니까. 5년이 빠르게 지나갔나, 힘들게 지나갔나.

▽노=좀 길게 느껴졌다. 중간에 다시 가다듬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없으면 5년은 길게 느껴진다.

▽이=어려운 시기였으니까. 격변하는 시기였으니까.

▽노=4년이 왜 4년인지 모르겠는데 관행처럼 4년이다. 4년이면 행정이나 절차상의 속도로 봐서 대개 초창기에 시작한 것이 자리가 잡히고 평가를 받을 만한 시기이다. 그 과정에서 옥신각신하면서 평가를 받기도 하고, 선거로 심판을 받고 그렇게 되면 몰라도, 새롭게 가다듬고 시작하면 몰라도, 중간과정 없이 5년을 가는 것은 매듭이 없어서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대통령께서 정당과의 관계가 그래서…. 변화무쌍하지 않은가. 오늘 국회에서 이라크 파병 연장안이 통과됐는데 한나라당은 전원 동의인데…. 아슬아슬하게 통과됐다.

노 대통령은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과의 통합에 반대해 내가 인기가 없어졌다”고 해 참석자들이 크게 웃었다고 주 당선자 대변인이 전했다.

○ ‘선배’가 들려준 청와대 생활과 퇴임 후 구상

노 대통령은 이 당선자에게 ‘대통령 선배’로서 청와대 생활에 대한 얘기를 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 정치를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이라고 전제한 뒤 “정책에 대한 비판은 해도 (대통령)직에 대한 것은 도와 드리겠다”며 퇴임 후 구상에 대해서도 얘기했다고 주 당선자 대변인이 전했다.

▽이=청와대 생활이 갑갑하지 않았나. 혹시 몰래 청와대 밖에 나간 일은 없나.

▽노=밖에 나가면 나갈 수 있는데 막상 나가려면 가벼운 분위기, 편안한 분위기에서 나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못 가는 경우가 많다. 잠시 휴식을 위해서 지방에 내려가 쉬려고 해도 여러 번, 수십 번에 걸쳐서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안 되고, 안 되고 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5년 전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까 보기 흉한 시설이 굉장히 많았다. 경호상의 필요성 때문에 만든 것이지만 미관상 아주 좋지 않았다. 이것을 고치고 싶었지만 초기에 고치면 자신을 위해서 고친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서 작년, 올해에 걸쳐 다음에 들어오시는 분(차기 대통령)을 위해 많이 고쳐 놨다. 당선자가 생활하기 굉장히 좋으실 거다.

▽이=대통령 퇴임 후에 고향에 내려가시는 것은 역사상 처음인 것 같다.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시골마을을 아름답게 꾸며 보고 싶다. 한국 농촌이 너무 무질서하게 개발돼 있다. 앞으로 3만, 4만 달러로 국민소득을 올리려면 국토가 그만큼 품격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내 고향에서 바로 이런 일을 하고 싶다.

○ 교육, 부동산정책 대화와 인수인계

노 대통령과 이 당선자는 교육 문제를 놓고 상당 시간 의견을 나눴다.

특히 노 대통령은 부동산정책과 교육정책을 강조했고, 청와대가 발간한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대한민국 교육 40년’ 등 책 두 권을 소개했다. 이 당선자가 “주면 읽어 보겠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즉시 부속실에서 두 권을 가져다 선물했다.

이 당선자는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이=한미 FTA 체결은 정말 잘한 일이다. 사실 대통령이 한미 FTA를 할 줄은 몰랐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이 미국 시장을 먼저 겨냥한 것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노 대통령 임기 중에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으면 좋겠다. 나도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겠다.

▽노=FTA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두 사람은 정권 인수인계에 대해 상호 협력을 다짐했고 덕담을 나눴다. 노 대통령은 이 당선자에게 2005년 말부터 인수인계를 대비해 대통령기록법 제정 등 각종 노력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고맙다. 인계를 위한 준비를 이렇게 많이 한 줄 몰랐다.

▽노=당이 다르고, 정치적인 비판은 주고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도 대통령직 자체에 대한 권위와 신뢰는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가 있을 때 설명해 나갈 것이다.

▽이=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반드시 만들겠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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