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성공단 정치적 이용에 못마땅”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10월 5일 03시 01분



회담 결과 보고대회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4일 저녁 경의선 도로 남측 출입사무소(CIQ) 앞에서 열린 회담 결과 보고대회에서 초등학생들의 합창을 듣고 있다. 파주=이훈구  기자
회담 결과 보고대회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4일 저녁 경의선 도로 남측 출입사무소(CIQ) 앞에서 열린 회담 결과 보고대회에서 초등학생들의 합창을 듣고 있다. 파주=이훈구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열린 공식 환송식을 끝으로 2박 3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날 오후 늦게 귀경했다.

이날 환송식은 이틀 전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환영식에 비해 다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짧게 진행됐다. 귀로에 오른 노 대통령 일행은 오후 9시경 도라산 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해 환영 행사와 대국민 보고대회를 했다.

○…당초 예정보다 다소 늦게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노 대통령은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첫 회담을 마치고 잠이 오지 않았다. 양측의 사고방식 차이가 크고, 벽이 두꺼워 뭐 하나를 합의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도) 오전(회담)에는 좀 힘들었다. 오후 가니까 잘 풀렸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말이 좀 통합디다”라고 표현했다.

노 대통령은 “(평양에 갈 때) 약간 불만스럽게 가져간 것이 북핵 문제”라며 “이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라 6자회담을 통해 풀고 있는데, 잘 풀리고 있는데 자꾸 북핵 문제 해결하고 오라고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타작마당이 따로 있는데 따로 어디서 타작마당 하라는 것이니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보따리가 작더라도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고 한 자락 깔아놓고 갔는데 돌아올 때 성과를 싸는데 가져갔던 보자기가 작아 짐을 다 싸기 어려울 만큼 성과가 좋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회담에서 납북자 문제 등은 국민의 기대만큼 성과를 못 거두었다”며 “해결하지 못해 국민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고 김 위원장에게 제의했고 특히 이산가족 문제는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평양 방문을 마치고 귀경하는 길에 개성공단을 시찰한 뒤 인사말을 통해 “개성공단은 참여정부에서 첫 삽을 떠 진작부터 한번 와 보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대통령이 함부로 국경을 넘어 들락거릴 수 없고 해서 못 왔는데 와 보니 정말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북측과) 대화를 해 보니 ‘남측에서 개성공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못마땅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개성공단이 잘되면 북측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고 말해 왔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며 “그러나 이곳은 남북이 함께 성공하는 자리이지 누구를 개혁, 개방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개혁, 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개성공단의 발전 상황을 언급하면서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평양에 가서 페달을 한번 확 밟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민족은 하나다’라고 하지만 사실 하나 된 때가 별로 없고, 적대할 때가 많다”면서 “그러나 협력을 잘하는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6자회담장이다. 미국과도 공조하지만 실제로는 북측과 공조와 협의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6자회담에 대한) 보도에 거짓이 없다”면서 “저에 대한 것은 거짓말이 많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해갑문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

○…노 대통령은 4일 오전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남포시에 위치한 평화자동차 조립공장과 다목적 방조제인 남포 서해갑문을 방문했다.

평화자동차는 2002년 4월에 터 14만4000여 m², 건물 규모 2만4650m²에 연간 1만 대 생산능력으로 설립됐으나 현재 연간 1000대의 승용차, 승합차, 화물차, 소형버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권 여사와 함께 쌍용자동차 부품을 조립해 만든 체어맨급 ‘준마’ 시승을 위해 운전석에 올랐으며 핸들을 잡은 뒤 차 앞에 있던 수행원들에게 “자, 갑시다. 앞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 주십시오”라며 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차가 움직이지 않자 노 대통령 바로 뒤에 있던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차문을 열고 브레이크 잠금장치를 점검하면서 시승을 도왔으나 차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노 대통령은 정 회장을 소개하며 “이분이 자동차 도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화자동차 공장에 이어 남포 서해갑문 기념탑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전망대로 올라가 서해갑문을 내려다본 뒤 고(故) 김일성 주석이 기념 촬영했던 장소에서 권 여사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 자리가 김 주석이 사진을 찍은 자리냐. 김 주석처럼 폼을 잡아 보라는 겁니까”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서해갑문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쓰고 서명했다. 서해갑문은 1981년 공사를 시작해 1986년 6월 준공된 대형 다목적 방조제다.

▼金위원장 “내가 당뇨-심장병? 전혀 그렇지 않다”▼

○…노 대통령은 4일 오후 개성공단 방문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물을 전달받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 45분 북측 출입사무소 앞에 도착해 북측 환송 인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하차했다.

박재경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노 대통령에게 송이버섯 한 상자를 열어 보여 주면서 “김정일 위원장이 드리는 선물을 갖고 내려왔다. 함북 칠보산에서 난 송이버섯 500상자이다. 총 4000kg(4t) 분량이다”라며 선물증서를 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에 앞서 남측 대표단은 ‘냉동차를 보내 달라’는 북측의 요청에 따라 2일 방북하던 길에 차량을 대동했고, 이 차량에 송이를 싣고 귀경했다.

북측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9월 추석을 맞아 송이버섯 3t을 남측 방문단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선물로 보내 온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애초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늦은 오후 4시 47분경 환송 행사장인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도착했다.

김 국방위원장 주최 환송 오찬이 길어진데다 전날 하지 못했던 공동 식수(植樹)행사에 참석하느라 시간이 지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환송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먼저 도착해 노 대통령을 맞았으며, 노 대통령은 차량에서 내려 북측 주요 인사들과 차례로 작별인사를 나눈 뒤 1분여를 걸어가며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환송인파의 “만세”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이날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 위원장이 마련한 환송 오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김 위원장은 오찬 도중 “(남측 언론에서) 내가 마치 당뇨병에, 심장병까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심장병 연구가 좀 약해서 사람들도 불러다가 (심장병) 연구도 시키고, 보완하고 있는데 잘못 보도들을 하고 있다”면서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크게 보도들을 하고 있다. 기자가 아니라 작가인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그래도 (남측에서) 나에 대해 크게 보도하고 있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1시경 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합의문에 서명한 뒤 합의문을 교환했다.

두 정상은 악수한 뒤 손을 맞잡고 높이 치켜들어 카메라에 포즈를 취한 뒤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었다.

이 공동선언은 3일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오후 회담이 끝난 직후부터 문안 작성이 시작돼 심야 협의를 거쳐 4일 발표 직전까지 20여 시간에 이르는 남북 양측 실무자 간 마라톤 조율을 통해 만들어졌다.

○…노 대통령은 4일 오후 평양 중앙식물원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함께 대전 산림청 식물원에서 가져온 소나무를 기념 식수했다. 기념 식수에는 한라산과 백두산에서 가져온 흙을 합토(合土)하고 백록담과 천지의 물을 합수(合水)했다.

○…방북 첫날인 2일 김 국방위원장과 꼿꼿한 자세로 악수해 눈길을 모았던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4일에도 똑같이 악수했다. 이날 평양시내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 합의문 서명 후 김 위원장과 악수를 하는 장면이 TV 카메라에 잡힌 것.

평양=공동취재단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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