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북협상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로버트 아인혼

  • 입력 2007년 9월 28일 03시 06분


2000년 7월 북-미 간 미사일 협상 당시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비확산담당 차관보(오른쪽)가 장창천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 아인혼 전 차관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달콤한 당근을 제시하되 비핵화를 진지하게 이행한 뒤에야 그것을 가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0년 7월 북-미 간 미사일 협상 당시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비확산담당 차관보(오른쪽)가 장창천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 아인혼 전 차관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 달콤한 당근을 제시하되 비핵화를 진지하게 이행한 뒤에야 그것을 가질 수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美, 노대통령이 북핵 얼마나 중시할지 주목”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남북한 간에는 논의해야 할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 시절 국무부 차관보로서 북-미 간 미사일 협상을 주도했던 로버트 아인혼(사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은 워싱턴에서 합리적 중도파로 분류된다.

그는 2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핵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논의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남북한 정상들이 핵문제를 세부적으로 논의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사실 구체적인 핵문제는 6자회담에서 논의되는 게 적절합니다. 단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반드시 명확히 해 줘야 합니다. 경제협력을 포함한 다양한 남북관계의 진전은 북한이 비핵화를 얼마나 진지하게 이행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워싱턴은 정상회담을 진심으로 환영하는가.

“미 행정부는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워싱턴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한국의 열망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한국이 비핵화 진전을 위한 충분한 노력 없이 남북관계를 추구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지켜보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궁극적으로 핵문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이 남북관계와 비핵화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고 아무도 그런 선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남북 화해는 한국인에게 매우 신성한 미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주제는 나란히 진행되고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핵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남북 간의 진정한 화해도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핵문제 때문에 회담 분위기를 망쳐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노 대통령도 ‘핵문제는 으레 거론해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거의 다 풀려나가는 문제를 강조하면 회담 분위기가 좋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회담에서 핵문제를 얘기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하는 바다. 하지만 관건은 어느 정도의 집중도를 갖고 제기하는가에 달려 있다. 빈칸을 채우듯 그저 제스처로 제기한 뒤 김 위원장이 (논의를) 거부하면 ‘오케이, 그러면 다른 안건으로 넘어갑시다’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핵문제에서 진전을 이뤄야만 남북관계의 더 넓고 다양한 어젠다에서 진전이 가능하다’며 진지하고 결의에 찬 자세로 김 위원장을 압박할 수도 있다.”

아인혼 고문은 “워싱턴은 노 대통령이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갖고 핵문제를 제기할지, 핵문제를 다른 남북관계 현안과 연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민주당 구분 없이 노 대통령이 핵문제의 진전과 남북관계의 진전 사이에 매우 강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남북 화해와 협력이 핵문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남북 협력 프로젝트들을 제안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모든 협력은 핵문제에서 적절한 진전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남북한 간에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논의되고 합의될 수 있지만 그 실행은 핵문제가 진전될 때까지 기다리길 바라는 것이다. 그 적절한 진전의 시점은 2·13 베이징합의의 두 번째 단계(핵시설 불능화 및 핵 프로그램 신고)가 완료되는 때로 삼으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핵문제 논의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는데….

“그가 원치 않는다면 그러라 하면 된다. 다만 노 대통령이 그에게 이렇게 주지시켰으면 한다. ‘우리는 매우 협력적이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원칙적 차원에서 합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의 실행은 2·13합의의 2단계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즉 한국 정부가 비핵화를 얼마나 중요시하는가를 북한에 주시시켜 달라는 것이다.”

―시드니 한미 정상회담 직후 ‘결례 해프닝’에서 드러났듯 노 대통령은 평화체제 구축을 핵심 과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분명 노 대통령은 평화체제 이슈를 제기할 것이다. 미국도 평화체제 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정전협정 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논의는 매우 빨리 시작될 수 있다. 2·13합의의 2단계가 완료되면 바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의 완료는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는 게 내가 이해하는 미 행정부의 명확한 방침이다. 단지 불능화가 아니라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해체가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상징적 선언 정도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

“평화체제는 남북한 간의 합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전협정 관련 당사국들이 있다. 물론 남북 정상이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선언을 한다면 정치적으로 긍정적인 발걸음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다른 관련 당사국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며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은 비핵화가 완료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담겨야 한다. 평화체제 구축이 다른 당사국들의 역할을 포함한 더 넓은 프로세스를 요구하는 작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로버트 아인혼:

1972∼2001년 29년간 미국 국무부에서 핵·미사일 비확산 문제를 다뤘다. 군축담당 차관보 시절인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함께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두 차례 면담하고 미사일 협상을 벌였다. 원칙에 충실한 중도파 한반도 전문가로 꼽힌다. 코넬대를 거쳐 프린스턴대 국제관계대학원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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