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투표 말썽 소지… 우리도 고민”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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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경기 과천시 중앙동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호열 상임위원. 그는 “현행 선거법이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천=전영한 기자
14일 경기 과천시 중앙동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호열 상임위원. 그는 “현행 선거법이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천=전영한 기자
■김호열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인터뷰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결정해야만 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호열 상임위원은 14일 선관위가 6월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특강과 원광대 강연 등에 대해 두 번이나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내렸을 때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상임위원은 “이론적으로는 어렵지 않았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려웠다”며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나라의 얼굴이고 대내적으로는 국법 질서의 총책임자인데 대통령이 법을 위반했다고 결정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9명의 중앙선관위원 중 유일한 상임위원인 김 위원은 중앙선관위 홍보국장, 선거국장, 선거연수원장, 사무총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해 10월 상임위원으로 선출된 선거법 전문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통령 발언 위법결정 내려야 했을때 가장 힘들어

이론으론 어렵지 않았지만 처한 상황이 어려웠다

대통령 공간 좁아진건 정당 울타리 벗어났기 때문

과거같은 관권 폐해 막으려 정치적 중립의무 도입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발언을 어떻게 보나.

“지금 선거법도 엄격한 데다 탈당도 해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축소시켰다. 지금 평당원도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평당원으로 남아 있었으면 우리 법에서 허용하는 정치 활동공간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정당이라는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났기 때문에 활동 공간이 그만큼 축소됐다.”

―외국은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훨씬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는데….

“관권선거의 폐해를 경험한 우리나라는 역사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통합선거법을 만들며 정치적 중립 의무 부분을 도입했다. 공무원이 외국처럼 선거에 개입하지 않고, 설령 선거에 개입한다 해도 국민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풍토가 된다면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 미국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도 정당에 가입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나라가 돼야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도입하려는 ‘모바일 투표’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정당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선거만큼은 헌법이 규정한 4대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가운데 이뤄져야지 부정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을 남겨 놓으면 안 된다. 진 쪽이 승복을 안 하면 어떻게 하나, 우리도 고민이다. 만약 한두 표 차로 떨어진 후보가 법원에 대통령후보 경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내면 법원도 난감할 것이고 선거 판은 완전히 뒤흔들릴 수 있다. 그런 위험한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당의 콜센터에서 예고 없이 전화를 걸어 투표하게 하는 식이라서 대리투표나 공개투표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머리 좋은 사람이 부정하려고 마음먹으면 한이 없다. 정당에서 결정할 일이지만 굉장히 말썽의 소지가 많기 때문에 그런 위험 부담이 있는 모바일 투표 도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처분 신청이 제기되는 등의 일이 벌어지면 본선거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는 여론조사를 도입했다.

“정당 경선은 당원들이 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이 국민 속에 뿌리박고 제대로 된 국민정당, 대중정당이 된다. 당비를 내고 정당 발전을 위해 헌신한 당원의 한 표보다 여론조사에 가중치를 6배 가까이 뒀다. 연구 대상이 될 일이다.”

―현재 당내 경선제도의 문제점은….

“가장 큰 문제점은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돼 있는 것이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후보자 한 사람으로 제한돼 있고, 캠프에 있는 사람들은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다. 선거운동 방법도 합동연설회, 합동토론회, 홍보물 발송, 명함 배부, e메일 발송으로 제한돼 있다. 전화 선거운동도 못하고 문자메시지도 못 보내는데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부분 위탁관리를 할 예정인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 선거인단 대리접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도 대리접수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강력하게 선관위 의견을 전하고 나중에 우리가 검증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대통합민주신당 측에 자체적으로 철저히 검증을 하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넘겨주는 선거인단 명부는 진실한 것으로 가정하고 관리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비판한 것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없나.

“자료를 전부 다 읽어 봤다. 대통령이 자신과 각을 세우는 것을 졸렬한 선거 전략이라고 비판했는데, 손 전 지사 한 사람만을 지칭한 것은 아니더라. 특정 후보를 폄훼한 게 아니라서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

―손 전 지사 측이 ‘청와대 인사들이 지역 활동가에게 손 후보 지지 철회를 권유했다’고 주장하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이 누구에게, 언제 받았다는 것만 밝히면 된다. 우리가 조사해도 그 외에 더 나올 게 없다. 지금 손 전 지사 측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겠다는데 이렇게 되면 조사를 해도 공방으로 그치게 된다. ”

―올해 정계 개편을 보며 생각한 게 있다면….

“후보자가 정당의 정책을 갖고 가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정당은 후보자 중심으로 모여서 후보자의 정책이 곧 정당 정책이 되는 희한한 구조다. 사람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하는 게 아니라 정책 정당이 돼야 한다. 지금은 후보자가 바뀌면 국가 정책을 다 바꾼다. 한나라당도 왜 정책이 후보자마다 다 다른가. 정당의 정책연구소가 정책을 아무리 연구해도 소용이 없다. 후보자가 캠프에서 은밀하게 만든 걸 가지고 오니….”

과천=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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