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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9월 9일 19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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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은 즉시 "통역의 잘못 때문"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는 9일 "현장분위기를 모르는 외국 언론이 왜곡된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7일 회담장에선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 같은 삐걱거림의 진짜 배경은 무엇일까.
▽당시 현장 모습은=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2차례나 북미평화협정 사안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고 물으면서 시작됐다.
노 대통령은 먼저 "부시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할 때 (우리가 비공개 회담에서 나눴던) 평화체제 내지 종전선언에 대한 말씀을 빠뜨리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때 한국측 통역은 "내가 잘못 됐을지 모르겠다(I think I might be wrong)"는 말을 추가해 넣은 뒤 "방금 했던 종전 선언 이야기를 내가 못 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셨느냐"고 통역했다.
부시 대통령은 "평화협정을 체결할지 여부는 김정일에게 달렸다. 핵무기 프로그램을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재삼 반복해 온 '모범답안'이었다.
이 같은 답이 나오자 노 대통령은 2초간 허허 웃으며 천장을 바라봤다. 보기에 따라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 모습이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똑같은 이야기 아니냐.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국민은 그 다음 말이 듣고 싶다"고 재차 물었다. 한국 통역은 '김정일 및 한국국민' 대목은 뺀 채 "좀더 명확하게(a little bit clearer) 말해달라"고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뭘 어떻게 분명히 말씀드릴지 모르겠다"며 같은 답을 되풀이 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감사합니다(Thank you, sir)"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시 대통령이 회견이나 회담을 마치려고 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통역 탓" 해명=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본보에 "부시 대통령은 한반도의 새 안보체제에 대해 설명했으나, 미국통역이 막연하게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고만 전달했다. 부시 대통령은 '충분히 설명했는데 왜 노 대통령이 자꾸 물을까'라고 의아해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백악관이 공개한 발언록을 보면 청와대가 지목한 대목에서 미국 통역의 실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통역은 "북한지도자가 … (핵을 포기하면) 동북아에 새 안보체재와 기대하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영어를 "북한지도자가 … (핵을 포기하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동북아에 평화체계를 새롭게 설정하게 된다"고 한국어로 옮겼다.
▽한미간 물밑갈등=어색한 회담장면이 생중계된 뒤 워싱턴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기류가 강했다. 미국은 장기간의 노력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가 완성되는 것을 전제로 한 법률행위로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구상하지만 반면 한국정부는 비핵화 이전이라도 '말로 하는 선언'을 내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TV 카메라에 공개된 10여분 동안 "평화협정(Peace Treaty)"를 거론했고, 노 대통령은 "종전선언(Declaration)"을 언급했다.
결국 이번 해프닝의 본질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큰 정치일정을 앞두고 있는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의 육성을 통해 '확실한 단기적 다짐'을 받으려고 한 데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7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줄곧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평화체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반복해 말해왔다"며 "이 말은 평양이 아닌 한국정부에게 들으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시드니=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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