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전문가 릴레이인터뷰<5>데이비드 스타인버그 교수

  • 입력 2007년 8월 15일 02시 58분


포용정책 필요하지만 한국 이익도 유지돼야
김정일, 정권 정통성-경협 등 다목적 포석
임기말 정상회담 부담… 취임초 이뤄졌어야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의 데이비드 스타인버그(사진) 교수는 미국 내에서 대북(對北)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원로로 꼽힌다. 일관되게 남북대화를 지지해 온 그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계획이 발표됐을 때에도 언론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적극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8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스타인버그 교수는 28일 열리는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피력했다. 이에 기자가 “한국 정부가 실망스러워할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네자 그는 “대화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하지만 북한의 의도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에 동의한 동기는 네 가지 정도로 분석된다. 첫째, 정상회담이 그에게 북한 내부에서 더 큰 정통성을 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둘째, 한국에서 더 많은 경제 원조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셋째, 한국의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고 한국의 리버럴(진보) 진영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넷째, 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틈을 벌리는 데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정상회담이 한미 간 긴장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인가.

“만약 북한이 한국에서 더 많은 경제 원조를 얻게 되면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는 게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 6자회담은 서로 팽팽하게 이익을 주고받으면서 한걸음, 한걸음 어렵게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균형이 깨질 가능성 때문에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6자회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진전이 더뎌지거나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폐쇄한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핵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핵무기, 핵물질 포기는 별개의 문제이고 훨씬 어려운 문제다.”

―한국 내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핵 문제 해결 자체가 정상회담의 부담이 돼선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혼란스럽다. 다들 혼란스러울 것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핵 문제 논의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정상회담 자체를 실패로 만들지는 말라는 뜻일 것이다. 물론 남북 간에는 핵 문제 외에도 협상해야 할 여러 일이 있다. 예를 들어 만약 북한이 비무장지대에 전진 배치한 전력을 후방으로 돌리겠다고 확실한 약속을 한다면 (핵 문제에 진전이 없다 해도) 긍정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시기적으로 이상한 때에 이뤄진다는 게 내 생각이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 대목에서 “정상회담을 몇 년 전에 진작 하든지, 아니면 새 대통령 취임 후에 열었어야 했다”며 “지금 시기의 정상회담이 노무현 대통령에겐 좋은 일일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 원조가 핵 문제 논의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인가.

“그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 측이 북한에 제공할 원조의 규모와 방법이다. 핵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말라거나 핵은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은 둘 다 옳지 않다. 핵 문제를 논의하면서 북한의 반응을 지켜봐야 한다. 만약 북한이 뭔가 반응한다면 노 대통령도 적절한 원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문제는 북한은 아무 것도 안하는데 일방적으로 주기만 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점도 아쉽다. 지원은 단계적으로 조건을 달고 이뤄져야 한다. 한국인들은 노 대통령이 북한에 뭘 어떻게 제공하려 하는지 매우, 매우 세심하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엔 설령 핵 문제의 진전이 없을지라도 남북대화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고 만나서 잃을 건 없다는 인식이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으로선 얻을 게 많고 잃을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잃을 게 있다.”

―한국 정부는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해 뭔가를 이뤄내겠다는 의욕이 강한 것 같다.

“미국 행정부의 방침은 비핵화가 이뤄진 뒤에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것이다. 한미 간에 차이가 있다. 평화협정은 한순간에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절차를 협상해야 하고 중국이 개입해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즉, 이미 생산한 핵무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이슈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평화 프로세스는 미국의 관점에선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대북 포용정책의 강력한 지지자이면서도 이번엔 걱정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여전히 포용정책을 지지한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엔 햇볕정책에 모든 게 종속돼 버렸다. 균형이 필요하다. 북한과의 협상, 대화는 좋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이익이 유지돼야 한다. 어떤 정부 기관이나 이념적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관찰자로서 한국이 더 나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비판적이라는 점이라고 이해해 달라.”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교수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정치학 교수 겸 아시아 연구소장 △맨스필드 태평양문제센터 소장(1987∼88년) △국무부 국제개발처 아시아 및 중동 담당 책임자(1970∼79년) △아시아재단 한국사무소장(1963∼68년) △미국 다트머스대, 하버드대, 영국 런던대 등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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