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총선 앞두고 ‘깜짝발표’ 닮은꼴

  • 입력 2007년 8월 9일 03시 02분


2000년 베이징의 남북특사2000년 4월 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인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의 차이나월드호텔에서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0년 베이징의 남북특사
2000년 4월 8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인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의 차이나월드호텔에서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부의 8일 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발표는 대형 정치 일정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점에서 7년 전 1차 정상회담 발표와 비슷한 대목이 있다. 그러나 발표의 과정과 절차 등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점도 있다.

▽발표 시기=2차 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된 8일은 정치권에서 가장 빠른 대선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19일)을 11일 앞둔 시점. 2000년 1차 정상회담도 16대 총선을 불과 사흘 앞둔 4월 10일 전격 발표되면서 당시 야당 등 일각에서는 “총선을 앞둔 이슈 전환용 회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래도 1차 정상회담 발표는 개최 시점(6월 13일)을 64일 앞두고 이뤄졌지만 2차 회담은 개최(8월 28일)를 불과 20일 앞두고 공개됐다. 일정상으로 보면 2차 회담을 위한 협상이 1차 때보다 훨씬 더 촉박하게 진행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발표 및 회담 성사 주체=2차 회담은 남측의 김만복 국가정보원장-북측의 김양건 노동부 통일전선부장이라는 공식 채널을 통해 성사됐다. 1차 회담이 남측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북측의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채널을 통해 성사된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공식 통로가 가동됐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남측의 경우 모두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협상을 맡았다는 게 공통점이다. 박 전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腹心) 중의 복심’으로 통하는 인물이고, 김 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출신으로 현 정부에서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과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1차장 등 승진 가도를 달렸다.

이와 함께 남측의 경우 1, 2차 회담 성사 과정에서 주무 부처인 통일부가 사실상 2선으로 밀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협상 장소, 합의서 등=2차 회담을 위한 협상은 대부분 북한 지역에서 진행됐다. 김 원장은 5월 30일 21차 장관급 회담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권호웅 북측 대표단장에게 2차 회담과 관련된 모종의 ‘사인’을 보냈고, 이후 두 차례 방북해 2차 회담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1차 회담 협상은 제3의 장소인 중국에서 진행됐다. 박지원 전 장관은 2000년 3월 17일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중국 상하이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북측의 연락을 받고 4월 8일 베이징에서 최종 협상을 벌였다.

회담 개최를 발표하며 공개한 ‘남북 합의서’도 일부 차이가 난다.

2차 회담 개최를 적시한 합의서는 남북 모두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합의에 따라’(북측은 이름 순서를 바꿔 발표) 회담이 성사됐다고 밝혔지만, 1차 회담 발표 시 합의서는 남북이 각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따라’와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로 회담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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