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서울-평양-워싱턴선 무슨 일이…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방북결과 설명제임스 켈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왼쪽)가 2002년 10월 5일 방북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서 최성홍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임동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 등 한국 외교안보 사령탑을 만났다. 켈리 차관보는 이 자리에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한 북한 측의 발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방북결과 설명
제임스 켈리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왼쪽)가 2002년 10월 5일 방북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서 최성홍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임동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 등 한국 외교안보 사령탑을 만났다. 켈리 차관보는 이 자리에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한 북한 측의 발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켈리, 北 HEU정보 숨김없이 설명했지만

한국 여권선 ‘美서 정보조작’ 의혹제기”

제2차 북한 핵 위기가 불거진 2002년 서울과 평양, 워싱턴에선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걸까. 당시의 진실은 지난해 핵실험으로 이어진 북핵 위기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필요하다. 이는 또 북핵 6자회담의 최대 관건 중 하나인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함께 방북했던 잭 프리처드 당시 대북특사,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 및 한미 양국의 전직 관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본다.



▽‘한국과 정보를 공유했지만…’=켈리 차관보는 평양에서 돌아온 10월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에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HEU 관련 발언을 한국 측에 전달했다.

스트로브 전 과장은 “당시 한국 측 관리들은 매우 놀라고 걱정하는 반응이었다”며 “우리가 전달한 걸 못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 후 한국 여권에선 ‘강 부상이 진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발언이 계속됐던 것일까. 그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한국 정부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여권 인사들은 사석에서 “미국은 당시 (강 부상의) 평양 발언에 대해 한 번도 정확한 내용을 전달한 적이 없다”며 정보 조작 의혹을 제기해 왔다. 임동원 전 대통령특보 등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나중에 밝혀질 것”이라며 미국 강경파가 (대북 관계 진전에) 브레이크를 건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스트로브 전 과장은 “당시 켈리 차관보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브리핑했다. 숨긴 게 없다”며 “한국 측에 (강 부상) 발언록 사본(나중에 참석자들이 복기한 것임)을 주지는 않았지만 회담의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발언록 사본은 미국에서도 몇 명만 봤다. 한국도 그런 문서를 다른 나라와 공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강 부상의 발언은 앞뒤 문맥과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다층적인 해석이 나올 수도 있는 내용이다. 스트로브 전 과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도 강 부상 발언에 매우 놀랐다. 김계관(외무성 부상)이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철저히 부인했기 때문에 강 부상도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강 부상은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 내용은 듣는 사람 누구나 ‘인정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음을 미국대표단이 인식하고 북한이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이해하길 바란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

미 정보 당국이 북한의 HEU 정보를 구체적으로 접한 것은 2002년 초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HEU 프로그램에 쓰이는 장비를 유럽 등에서 구입한 영수증 등을 입수한 것이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가 탈북자의 증언 등 북한의 HEU 개발 가능성에 관한 정보를 미국에 전달한 적도 있었다.

결국 미 정보 당국은 2002년 여름 북한이 HEU를 추진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한국 측에도 세 차례 이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고 양국 관계자들은 전한다.

강 부상 발언이 공개된 뒤 백악관을 방문한 한국의 고위 인사는 “한국 주식시장은 HEU 공개 이후에도 주가가 3포인트밖에 안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건 별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해 미 관리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외교부 장관 공관 브리핑과 관련해 한 전직 관리는 “현장에선 사태의 심각성이 전달됐지만 결국 나중엔 또 ‘별거 아니다’는 식의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서해교전과 한국의 희망사항’=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서해교전 직후인 7월 1일 “미국은 서해도발 사태에도 불구하고 북-미 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우리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1일경 한국에 ‘서해교전 등으로 평양행이 어렵겠다’며 연기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전직 당국자는 “당시 한국 정부는 북-미 회담에 거는 기대가 컸다”고 전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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