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역시 한나라당

  • 입력 2007년 7월 4일 2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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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딸 결혼식이 있다고 해서 잠깐 하객(賀客)으로 참석했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강 대표는 “편지 잘 받았다”고 했다. 필자가 ‘강재섭이 강재섭을 버릴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을 잘 봤다는 얘기였다. 강 대표다운 덕담(德談)이고 유머였지만, 내심 글을 쓰는 보람 같은 걸 느꼈다. 통각(痛覺)을 잃은 한나라당과 강 대표의 모습을 질타하는 글이었다.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감각이 완전히 죽진 않았다는 뜻이겠지’라고 생각하며 결혼식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박성범 의원이 어제 한나라당에 복당(復黨)했다. 김덕룡 의원은 그제 당원들에게 이명박, 박근혜 두 경선후보의 네거티브 검증 공방을 꾸짖는 글을 보냈다. “안에서 던진 돌이 더 아프다”고…. 박, 김 두 의원은 한나라당이 작년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비리 혐의’로 검찰에 ‘자진 고발’한 인물들이다. 특히 박 의원은 구청장 후보 공천 대가로 21만 달러를 받았고, 부인한테는 로베르토까발리 코트, 루이 13세 양주, 샤넬 핸드백, 세이블 캐시미어 숄, 발렌티노 스카프 같은 ‘명품 8종 선물세트’가 전달됐다는 사실까지 드러나 말 그대로 장안의 추문(醜聞)이 됐다. 정당이 소속 의원을 다른 일도 아니고 ‘공천비리 혐의’로 고발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제 살을 도려내는 한나라당의 절치부심(切齒腐心)이 다소 느닷없긴 했지만, ‘차떼기 당’의 과거로부터 벗어나려는 갱생(更生)의 의지가 가상해 보였다.

박 의원은 불만을 토로하며 탈당했고, 김 의원은 “책임을 지고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모두 정계 은퇴를 시사한 언행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올해 대선이 다가오자 당이 앞장서서 박 의원의 복당을 권유했다. 명분은? 21만 달러는 곧바로 돌려줘 검찰에서 무혐의가 됐고, ‘명품 선물’은 유죄가 인정돼 700만 원 벌금형을 받긴 했지만 모두 ‘남대문표 짝퉁’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책임지고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하여 동료 의원들에게서 동정의 박수를 받았던 김 의원은? 그는 지금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여하며 이, 박 두 주자 진영으로부터 러브콜까지 받고 있다. 이, 박 두 캠프는 “김 의원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대변 경쟁’까지 한다. ‘김덕룡 사실상 정계은퇴 시사’라고 한 지난해 언론 보도는 결국 오보(誤報)가 됐다. 역시 한나라당이다.

강 대표는 어제 국회의원, 당원협의회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화합이 최고의 정권쟁취 무기이고, 결속이 최상의 정권교체 전략”이라고 했다. 어제가 미국 독립기념일이라는 역사까지 상기시키며 “우리도 오늘의 독립운동, 정권교체 운동을 기필코 성공시키자”고도 했다.

정치가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지만 정말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막막해진다. 이젠 독립 선열들도 모자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까지 끌어들여 국민의 눈을 흐릴 셈인가. 당이 고발한 사람까지 다시 불러들여야 할 만큼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대선을 포기하는 게 어떻겠는가. 정권교체 안 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웰빙족(族)’ 아닌가. 경상도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뭐 하러 그 힘든 ‘독립운동’을 하려는가.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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