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두 주자, 딴나라 꿈꾸나

  • 입력 2007년 4월 28일 03시 02분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신경전이 심상치 않다. 두 대선주자 캠프 사이에 ‘이제는 같이 갈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비장함마저 흐른다. 한나라당의 4·25 재·보선 참패 이후 당 지도부와 함께 대선주자 책임론이 제기됐다. 대선주자 ‘빅2’가 공동 지원 유세를 한 번도 성사시키지 못했고 지원 유세를 ‘사유화’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두 진영이 당분간 자숙하자는 쪽으로 분위기를 잡으면서 역으로 두 대선주자에게는 잠시 쉴 틈이 생겼다. 》

○ 박근혜, 이명박을 겨누다

박 전 대표 측이 정적을 깨고 전면전을 예고하는 공격을 시작했다.

전여옥 의원이 26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서 공동 유세를 못한 대선주자의 책임론을 거론하자 박 전 대표의 한선교 대변인은 “합동유세를 하고 안 하고에 따라 누굴 뽑고 안 뽑고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대전 시민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박 전 대표도 “각자 조용히 도우면 되는 일이다. (행정중심도시 법안에 대해 이 전 시장이)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고 했는데 같이 유세를 하면 오히려 표가 떨어지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이는 두 대선주자 진영의 심각한 갈등을 노출한 것이고 공동 유세를 하지 못한 게 재·보선에서 악재로 작용했다는 비판에 대한 반격인 셈이다. 공동 유세를 거부한 건 박 전 대표 측이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 측은 겉으로는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캠프 내부에선 “이제 갈라서자는 거냐”며 부글부글 끓었다.

이 전 시장 측은 “당시 이 전 시장이 언론인들과 만나 ‘내가 무슨 힘이 있느냐. 나보고 군대라도 동원해 막으라는 말이냐’고 얘기한 것을 일부 언론이 ‘군대를 동원해 행정도시를 막겠다’는 표현으로 잘못 보도한 것을 박 전 대표가 그대로 인용했다”고 반박했다.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시장은 행정도시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견해를 수차례 밝혀 왔다”며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박 전 대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일축했다.

○ 쏟아지는 당내 비판

당내 ‘희망모임’ 대표인 안상수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적절치 못한 발언이다.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것은 옹졸하게만 보인다”고 비판했다.

전재희 정책위의장은 국회대책회의에서 “다른 후보에 대한 질문에 후보들이 소이부답할 수 없느냐”며 “후보, 캠프 대변인, 캠프 소속 의원이 모두 이렇게 네거티브를 하는 것은 후보들 스스로 상처를 입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훈 정보위원장은 “특정 주자와 특정 의원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강력히 경고해야 한다”고 했고 이주영 수석정조위원장은 “가차없이 경고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 전 시장 측의 좌장격인 이재오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현 지도부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고 판단해 강 대표가 제시하는 당 쇄신 방안을 보고 거취를 결정하겠다”며 조건부 사퇴론을 밝혔다.

유석춘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은 “한나라당의 부패에 국민이 절망했고 두 대선주자의 원심력도 국민의 심판에 한몫했다. 선거 결과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박 전 대표가 발이 부르트고 손이 퉁퉁 붓도록 하루 5시간씩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 유세했는데 선거 패배의 책임을 박 전 대표에게 돌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 무책임한 지도부… 분당 위기?

사실 대선주자 빅2와 캠프 관계자들은 서로 함께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은 게 사실이다. 캠프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저쪽 주자가 당 후보가 되는 건 몰라도 대통령이 되는 건 절대 못 본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런 갈등은 박 전 대표 측의 제기로 불거진 ‘도덕성 검증’ 공방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실제로는 두 주자가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 전 시장에 대한 박 전 대표 측의 기본적 인식은 ‘국가보안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표만 의식해 소신을 안 밝히는 사람, 범인 도피 등의 중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이 전 시장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대선에서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박 전 대표에 대한 이 전 시장 측의 생각은 ‘온실에서만 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박정희의 딸’로 집약된다. 콘텐츠가 빈약하고 승리를 위해 네거티브 공세에만 치중하는 ‘적 중의 적’이라는 인식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2004년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 당 대표가 되면 한나라당과 야당은 망한다”고 주장했다.

○ “강재섭 대표 체제 유지해야”

한 당직자는 “당이 재·보선 참패로 지도부 와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이 서로 네 탓 공방을 하고 있다. 이러다 정말 당이 깨지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다.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주자가 재·보선 참패 수습 과정에서는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며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 지도부는 “두 대선주자 진영도 강 대표 체제가 당을 계속 이끌길 원하고 있다. 대안이 없지 않으냐”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소장파와 중립지대 의원은 “책임질 사람을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지원하는 두 주자의 행태는 구태”라고 비판했다. 두 주자가 강 대표와 연대해 ‘현상 유지’에 묵시적으로 합의한 것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해 당을 흔드는 것보다 현 경선구도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강 대표가 자리를 지키더라도 두 대선주자의 눈치를 종전보다 더 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역설적으로 두 주자가 갈라서면 언제든지 당이 깨질 수 있을 정도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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