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전엔 北송금 투명성 강조하더니…

  • 입력 2007년 4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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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홍보와 국민연금법 개정안, 대북 접촉 문제 등에 대해 발언할 내용을 요약한 메모를 보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홍보와 국민연금법 개정안, 대북 접촉 문제 등에 대해 발언할 내용을 요약한 메모를 보고 있다. 김경제 기자
“비록 통치행위라 할지라도 투명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고 합법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어서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송금사건 특검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수용했다.”(2006년 12월 2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안희정 씨의 대북 비밀접촉은) 대통령의 당연한 직무행위 범위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10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 씨의 대북 접촉과 관련해 노 대통령의 대북 인식이 불과 4개월 만에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북 접촉의 투명성보다는 대통령의 직무행위를 강조하는 뉘앙스여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투명성 문제는 해당사항이 없다?=노 대통령은 10일 안 씨의 대북 비밀접촉과 관련해 “(이 사건엔) 투명성 문제가 해당사항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에게 이해관계가 걸린 중요한 국가적 결정이 있을 때 그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지, 안 씨의 대북 접촉 과정은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현 정부 출범 초 김대중 정부 시절의 대북송금사건 특검을 수용하면서 노 대통령이 ‘투명성’을 유독 강조했던 것과는 맞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민주평통 행사에서 특검 수용 배경을 설명하면서 “남북관계에서 초법적인 통치행위가 성립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이 수용해 줄 때만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본보가 안 씨의 대북 비밀접촉을 보도하기 전까지 안 씨는 물론 청와대도 시종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해 온 것도 투명성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안 씨의 대북 비밀접촉이 결과적으로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안 씨가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호남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를 만나러 갈 때 ‘공개할 게 없다’는 결과를 예상하고 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로선 뭔가 성과를 기대하고 비밀접촉을 진행했을 개연성이 높다.

안 씨가 방중에 앞서 이호철 대통령국정상황실장,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 등과 사전 협의를 한 것도 당시 대북 접촉이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한다.

이 실장은 지난달 연합뉴스를 통해 “나와 안 씨, 이 의원은 북한이 실제로 특사를 요구할 경우 누가 가는 것이 좋은지를 논의했고, 대통령 생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거론됐다”고 밝힌 바 있다. 통치권자의 의중을 감안해 대북 비밀접촉을 했다는 얘기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통치행위가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론은 독재시대의 산물이다”며 “대통령도 이를 의식해 직무행위라는 말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되면서 아주 예외적으로 통치행위가 행사됐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북 접촉 법적으로 문제 없나?=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안 씨가 남북교류협력법상 사전 신고 의무를 위반했는지에 대해 “이것은 성격상 대통령이 특별히 지시한 것이기 때문에 사전 신고할 사항은 아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정리하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에는 남측 주민들이 북측 주민과 접촉할 때 통일부 장관에게 사전이나 사후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또 위반 시엔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돼 있다.

남북교류협력법 이외에 안 씨는 남북관계발전법도 위반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법은 ‘이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정부를 대표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며 구체적으로 △북한과 교섭 또는 회담하는 행위 △북한에 정부의 인식을 전달하는 행위 등을 금지규정으로 적시했다. 조 의원은 “안 씨의 임무가 바로 정부의 인식을 전달한 것 아닌가”라며 “그렇다면 안 씨를 대북특사로 임명해서 보내면 되는데 대통령은 그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법은 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비밀접촉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2005년 12월 제정한 것이어서 스스로 공언한 원칙을 뒤집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희정 비선(秘線)라인은 적절했나=노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안 씨의 비선라인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공식 직함도 없는 안 씨가 대한민국 정부의 의사를 북측에 전달한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설령 남북정상회담 추진 논의라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비선 접촉이 필요했다 하더라도 국가정보원 등 대북전문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안 씨를 채널로 삼은 것은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안 씨가 접촉했던 남북 채널은 전문가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며 “치밀한 정보 수집과 검증 절차 없이 덜컥 접촉에 나선 것은 아마추어리즘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안 씨가 전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 출신인 K 씨를 사전에 베이징에 보낸 것도 그가 대학 동기라는 점을 감안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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