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6년 11월 29일 03시 0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평양 시내 곳곳에는 ‘핵보유국이 된 5천년 민족사의 역사적 사변을 길이 빛내자’, ‘핵보유국의 당당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을 단호히 짓부수자’는 선동적인 구호가 난무하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들도 “가장 큰 비극은 경제적 난관이나 물질생활의 빈곤이 아니라 정신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자력갱생’을 위한 강행군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 북한이 겪었던 ‘고난의 행군’은 현재 북한이 맞고 있는 핵겨울과 엄연히 다르다. 당시는 40여 년간 북한을 이끌어 온 김일성 주석의 사망, 1995년의 대홍수에 연이은 ‘자연재해’에 의해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이번에 맞게 된 ‘핵겨울’은 1994년 파산 직전의 ‘주식회사 북한’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최고경영자(CEO) 김 위원장이 개혁 개방이라는 처방 대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라는 최악의 경영 실책을 저지른 탓에 불러온 ‘인재(人災)’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실험에는 최소 3000억원이 들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이 돈이면 쌀 100만t(국제시세 t당 300달러)을 구입할 수 있다. 쌀 배급량이 1일 평균 500g인 북한사정을 볼때 주민전체(2300여만명)가 100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쌀을 핵 실험에 낭비했다는 산술적 계산도 가능하다.
핵실험으로 인해 외부의 식량원조도 줄었다. 당장 남측이 50만 t의 식량지원을 중단했고 세계식량계획(WFP)를 비롯한 국제기구도 식량지원을 축소 또는 중단했다.
김 위원장은 핵보유국이 된 만큼 ‘판돈’이 커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다시 ‘죽음의 행군’을 준비하는 김 위원장의 행동은 논밭은 물론 집문서까지 잡히고도 모자라 아내를 담보로 투전판에 올인하는 행태나 다름없다.
평양역 광장에 ‘핵보유국으로 일떠 세운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라는 구호가 걸려 있지만, 과연 몇 명이나 진심으로 고마워할지 모르겠다.
하태원 정치부 taewon_h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