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출신 386정치인 ‘사상전향’ 고백을”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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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에서 ‘일심회 사건의 교훈과 올바른 대응’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 전영한  기자
19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에서 ‘일심회 사건의 교훈과 올바른 대응’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 전영한 기자
자유주의연대 ‘일심회 사건으로 본 386’ 토론

《뉴라이트 운동단체인 자유주의연대 주최로 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일심회 사건의 교훈과 올바른 대응’ 토론회에서는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본 ‘386세대’의 공과(功過)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뤄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1980년대 주사파 운동의 핵심인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와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토론자들은 이번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한때 친북적인 사상을 가졌다가 정치권에 뛰어든 386이 과거에 주사파 운동을 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지금은 친북 사상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고백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 386 전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매도도 자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

(발제-386 ‘일심회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1980년대 학생운동의 성격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당시 학생운동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요소와 민주화 과정에서 결합된 사회주의 및 친북 요소가 함께 있었다.

따라서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고 자랑스럽게 평가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의 요소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검토해야 한다.

일심회 사건의 배경에는 1980년대 학생운동에서 나타난 사회주의 경향이 있다. (386세대는) 북한 문제에 감성적 민족주의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일심회 사건은 북한 문제에 대해 냉철한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 측면이 있다.

북한은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보이면서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있고, 남침 가능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여지를 두고 있는데 (386세대는) 이에 대해 너무 순진하고 안일하게 생각한다.

○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발제-주사파의 사상적 변화와 현주소)

1970, 8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학생들이 철권통치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1980년대 학생운동의 시작이다.

또 민주주의는 분단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생각이 생겨났고 이 점이 주사파 형성의 토대가 됐다. 1986년에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이 ‘강철 서신’을 써 (주체사상이) 학생운동권에 급속히 확산됐다.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운동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일부 세력이 합법 정당을 구축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을 창당했고 주사파가 대거 입당했다. 햇볕정책 등으로 민중민주계열(PD)은 비주류로 밀렸다. 그래서 민노당에서마저 주사파가 주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

(사회자인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김영환 편집위원이 1991년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 주석과 몇 차례 장시간 대화했다고 소개했다.)

(일심회 사건은 과거 간첩 사건과 비교해) 확장 능력과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경우 핵심 조직원이 있고 다양한 외곽조직이 5겹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 일심회 사건은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 정확한 실체를 알기 어렵지만 이 외곽이라는 것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별 볼일 없는 수준이 확실하다. 규모 자체가 왜소하고 확장 능력 없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에 위협적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다.

처음에 (내가) 민혁당을 할 때가 스물일곱이었다. 주위 친구, 선후배들은 각 조직의 말단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386은 사회 요직에 포진해 있다. 그래서 이들의 말이 사회 전체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위협적일 수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지하 활동에 참여한 사람이 서울대 82학번만 따져 2000여 명이었다. 이 사람들이 (현재) 사회 각계에 흩어져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심회 관련자들이) 청와대 등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있지만 그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 본다. 한국의 친북단체는 세력이 작아져 소멸 위기에 처했다. 일심회 사건도 (앞서 말한 측면 때문에) 우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꺼져가는 불빛이라고 보고 있다.

일심회는 전형적인 대남지하사업이다. (결국) 대북포용 정책의 성과가 무의미하다고 본다. 북한이 추구하는 노선은 변한 것이 없다.

386은 유럽의 68세대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386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사회를 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힘들 정도로 바꾸어 놓았다.

전체 386에서 친북 주사파는 많아야 0.5% 정도 있다고 본다. 0.5%의 소수 친북 주사파 때문에 386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장민호 씨는 수사 초기에 상당 부분을 시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중간에 마음이 바뀐 듯하다. 다른 관련자도 혐의를 부인한다. 그래서 조작설이 제기됐다. 그러나 수사당국이 파악한 전반적인 증거를 신뢰하는 것이 맞다.

과거에 재야 때 같이 있던 사람이 일반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구속됐는데 검사에게 거짓 진술을 한 뒤 진술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사건 자체가 조작인 듯 몰고 간 사례도 있었다.

일심회 사건에서 조직 규모가 커지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장 씨의 운동권 기반이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장 씨의 제안을 수용할 사람이 없다.

다만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386 인사들은 자기 과거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386운동은 순수한 민주화 운동이었을 뿐 주사파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운동을 그만뒀으므로 현재 (친북 사상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얘기하면 되는데 이 사실 자체를 부인해 문제를 풀기 어렵게 만들어 놨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곤혹스러워하는 듯하다. (정치권에 있는 386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

우리 사회는 현재 비정상적인 시각이 양쪽에 있다. 좌파는 미국과 우리 사회 앞잡이들이 사회를 흔든다고 생각한다. 우파는 북과 관련을 맺는 사람들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사건을) 386간첩사건이라 하는데 386세대 대다수가 반민주화 운동을 한 것처럼 곡해될 여지가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민족주의 성향 때문에 친북 경향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대다수는 아니었다. 1980년대 지배적 정신은 민주주의였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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