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PSI 오해 있어… 한국 결정 기대한다”

  • 입력 2006년 10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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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외교장관 회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17층 장관접견실에서 반기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양국 실무진이 배석한 가운데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 외교장관 회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17층 장관접견실에서 반기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양국 실무진이 배석한 가운데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과 미국은 19일 노무현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면담 및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대북 제재 방안 및 수위를 놓고 의견 조율을 시도했다.

그동안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금강산 관광 사업 등 남북경협 등에서 드러난 양국 간 이견을 해소해 대북 제재 국면에서 힘을 한데 모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두 사안에서 한미는 여전히 큰 시각차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라이스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PSI 참여 확대와 남북경협 사업 지속 문제 등 대북 제재와 관련된 사안 전반을 놓고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장시간 설득 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면담 시간은 예정됐던 50분에서 80분으로 30분이나 길어졌다. 면담 분위기도 시종일관 무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북 제재와 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견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대북 제재 조치를 취하는 것과는 별도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통해 북한 설득 노력을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은 일단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를 꺾은 뒤 대화를 통한 외교적 설득을 제재 조치와 병행해야 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美 “안보리결의 따라 의무 다해야”

韓 “적극 검토” 기존입장만 되풀이

● PSI 참여 확대 문제

라이스 장관은 이날 한미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PSI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화물 검색은 해상 봉쇄를 하자는 게 아니다. (화물 검색을 규정한) 안보리 결의 내용에 따라 각 나라가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각국이 단합된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PSI가 안보리 결의(화물 검색 규정)와 같은 성격을 띠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PSI 참여 확대가 안보리 결의 이행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노 대통령과의 면담 및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이 같은 논리를 펴며 한국이 PSI에 정식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반 장관은 남북 간 무력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국내 여론을 이유로 들어 PSI 정식 참여 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미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의심스러운 북한 선박에 대한 검색을 하고 있다는 설명도 했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은 노 대통령과 반 장관을 상대로 PSI에 정식 참여하더라도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북한 선박 검색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반론을 펴며 설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양국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2년여 동안 (PSI에 정식 참여한) 각국이 국제법 및 국내법에 따라 많은 정보를 근거로 선박 검색 활동을 벌였는데 무력 충돌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반 장관은 각각 라이스 장관에게 “(PSI 참여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의사만 반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면담에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가운데 외교적 해결 노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라이스 장관은 “안보리 결의문 채택으로 북한 핵실험에 대해 국제사회가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며 결의 이행을 강조하는 논리를 폈다.

라이스 장관은 노 대통령과의 면담이 끝난 뒤 바로 이어진 공동기자회견에서도 한국의 PSI 확대 참여 문제를 거론하며 압박을 계속했다.

그는 “한국이 PSI에 대한 참여를 확대할지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며 “한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미국과) 협의를 하는 데 대한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라이스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대화를 통한 대북 설득보다 제재에 치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6자회담에선 당근을 가진 국가와 채찍을 가진 국가들이 함께하는 협상이므로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써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반하는 핵실험을 했고 안보리 결의문이 채택됐기 때문에 북한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다”고 말해 제재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벗어나려면 6자회담에 무조건 복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한편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기자회견 말미에 미국 기자가 ‘미국에 한국의 운명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의 18일 발언의 진의를 묻자 반 장관이 “송 실장의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거나 오해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해명에 나서는 등 어색한 분위기도 연출됐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美 “각국이 가진 지렛대 활용 필요”

韓 “北개방 촉진 긍정적인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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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개성공단

19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 권부에 달러를 제공하는 돈줄’로 지목했던 금강산관광에 대해 직설적으로 반감을 표시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은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된 금융이나 돈줄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1998년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이후 북한에 유입된 약 25억 달러(약 2조4000억 원)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치자금 또는 WMD 개발비로 사용했다고 보는 미국으로서는 금강산관광을 용납할 수 없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라이스 장관은 각자가 갖고 있는 ‘레버리지(지렛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견해를 묻자 라이스 장관은 “한국에 뭘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면서도 “각국이 가진 레버리지를 통해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킬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레버리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있었고 논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라이스 장관의 발언을 종합해 볼 때 대북 포용정책의 상징으로 사실상 한국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양대 경협사업이라는 대북 지렛대를 제대로 활용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금강산관광과 관련해 한미 간에 아직 이견이 있음을 내비쳤다. 반 장관은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대북 경협사업에 대해 미국이 중단을 요청했는가’라는 질문에 “금강산관광은 상징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세부사항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만 답했다.

반 장관은 정부가 취하기로 한 금강산관광에 대한 보조금 지원 중단 등의 조치를 소개한 뒤 7월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 식량 및 비료 제공을 보류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이미 상당 부분 소모했다는 점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 장관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서는 금강산관광과는 달리 자신 있는 어조로 설명했다.

반 장관은 방미 기간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등과 만난 것을 소개한 뒤 “라이스 장관과 오늘 협의하는 과정에서 개성공단 사업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하는 데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설명했고 이를 미 측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 주민의 자본주의 학습 효과가 있어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체제변환(regime transformation)’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금강산관광에 대한 미국의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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