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돈벌이 왜 시켜주나” 한국 압박 본격화

  • 입력 2006년 10월 18일 03시 01분


코멘트
한-미-러 “잘 풀어봅시다”17일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한국 미국 러시아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서 천영우 한국 대표(가운데)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 대표(왼쪽),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대표가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러 “잘 풀어봅시다”
17일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한국 미국 러시아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서 천영우 한국 대표(가운데)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 대표(왼쪽),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대표가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힐 ‘금강산 관광’ 강경 발언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대북 제재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7일 한국을 방문해 금강산 관광 사업을 북한 권부의 돈벌이 창구로 지목한 반면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선 북한의 경제개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했다.

개성공단에선 많은 북한 노동자가 일을 하면서 자본주의를 직접 경험하는 데 반해 금강산에는 훈련받은 소수의 북한 관광 안내원 외에는 북한 주민들의 출입이 전면 통제되고 있어 북한 개방에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우선 단순한 돈벌이 사업의 성격이 짙은 금강산 관광을 중단 내지 축소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라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문에 대한 유엔 회원국들의 이행 과정을 판단하고 이행을 촉구하는 역할을 할 제재위원회에서도 금강산 관광 사업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은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현금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및 생산에 투입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의 위조 달러 유통 등에 이용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계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불법 행위와 연관된 자금이 금강산 관광과 관련된 단서를 확보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힐 차관보의 방한에 앞서 미국은 이미 지난 주말 한국 정부에 강한 대북 압박 조치의 필요성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 정부 내에서도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분리해 금강산 관광 사업 중단 또는 축소 방안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핵실험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만든 ‘북한 핵실험 시 대처 방안’ 매뉴얼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중단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지난주까지 정부 내에서는 두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뤘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지난 주말 대북 압박 수위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기 전까지 통일부가 워낙 강하게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사업의 지속을 주장해 다른 의견이 먹혀들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따라 금강산 관광 사업의 주체인 현대아산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가 순수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은 중단하기 어렵다고 밝혀온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으나 내심 사업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정식 참여 요구에 대한 정부의 판단도 변화를 보이는 조짐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6일(현지 시간) 미 국무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중국의 PSI 정식 참여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17일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PSI 참여 문제에 대해 ‘안보리 결의문에 부합하는 방식의 참가 폭 조절’을 언급한 것은 지난주 “안보리 결의문과 PSI 참여 문제는 관련이 없다”며 버티던 자세에서 많이 후퇴한 것이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힐 차관보 일문일답 “개성공단外 프로젝트 이해안가”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에 앞서 17일 서울에 온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금강산 관광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힐 차관보는 이날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과의 면담에 이어 한국 미국 러시아 6자회담 수석대표 접촉,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만찬 등 촉박한 일정을 소화했다. 다음은 힐 차관보가 이날 한국 기자들과 수차례 만나 나눈 일문일답 종합.

―한국과 무엇에 대해 주로 협의했나.

“6자회담 재개 등 북한의 핵실험으로 조성된 매우 어려운 현 국면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에 대해 주로 논의했다. 하지만 북한에 최선의 이익이 될 대화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개인적인 견해지만 두 프로젝트는 다르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개성공단은 북한으로 하여금 회사와 노동자들의 행동 등에 대한 국제적인 표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개성공단은 개혁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한다. 그러나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그만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정식 참가를 요청했나.

“한국에는 마치 PSI가 적대적으로 배를 정지시켜 위기를 만들어 내는 체계라는 인상이 퍼져 있는 것 같다. 국가들이 PSI에 참가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의에 따르는 것으로 러시아 등 많은 국가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각국은 PSI의 어떤 파트에 참가할지도 정할 수 있으며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동향을 주시하며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2차 핵실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북한 외무성의 성명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특히 북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2차 핵실험은 국제사회에 대한 호전적인 북측의 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매우 명백하게 대응하는 것 외에는 선택 가능한 옵션이 없을 것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라이스 국무 회견

“한국 일본등 美 동맹국들 혜택만큼 부담도 나눠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한중일 3개국과 러시아 순방에 앞서 16일(현지 시간) 가진 기자회견. 그는 서두부터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 순방의 목표는 동북아 지역 우방들이 포괄적 전략을 지지하도록 이끌어 내는 데 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 같은 동맹국을 위해 전면적인 안보와 방위 공약을 이행할 의지와 능력을 지녔다. 북한의 행동은 우리가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줬다. 이해관계 증진을 위해 지역 내 모든 나라는 공동의 안보가 주는 혜택은 물론 부담도 나눠야 한다. 또 이번 순방에서 북한 위험물질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위험물질의 적발과 탐지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을 어떻게 마련할지를 논의할 것이다.

―(대북 제재에) 한국이 불편해하는(apparent uneasiness) 것 같은데….

“북한이 핵실험을 한 당일부터 모든 당사국이 강력한 반응을 보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는 겨우 이틀 전 통과됐고 이제 이행에 들어가야 한다. 사치품 반입 금지 조치는 국민은 굶주리는데 사치품을 즐겨 온 정권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은 모든 당사국과 (제재 이행과 관련해) 많은 협의를 하길 희망한다. (한국 등 일부 국가의 태도는)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이 지역 국가들의 자연스러운 걱정이기 때문에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

―미군, 일본군, 한국군이 개입되는 군사조치 계획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동북아 안보 위협의 실체 또는 개념이 바뀌면 방위협력과 동맹 의무도 그에 따라 (다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2차 핵실험 가능성은….

“우리는 분명히 주시하며 당사국들과 협의하고 있다.”

―한국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사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실망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묵인할 것인가.

“글쎄, 우리는 한국이 대북 활동 전반을 놓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것이다. 그런 결정의 많은 부분은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한국이 모든 대북 활동을 재평가할 것임을 분명히 한 만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보겠다. 미국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이 있기를 바란다. 미국이 최근 대북 지원을 중단했지만 이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투명성 부족 때문이다. 우리의 지원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