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대통령들 청와대 간담회서 설전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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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가운데)이 10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안내하며 오찬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석동률 기자
노무현 대통령(가운데)이 10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안내하며 오찬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석동률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0일 북한 핵실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전직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현 정부 출범 후 YS와 DJ가 자리를 함께한 것은 처음이다. 최규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이날 YS가 노 대통령과 DJ의 면전에서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이에 가세하면서 1시간 20분 내내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YS는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은 공식 폐기 선언을 해야 한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 등 대북사업은 전면 중단해야 한다. (정부는) 대국민 공개 사과도 해야 한다. 증시 불안 해소를 포함해 안보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YS의 실제 발언은 훨씬 더 강했던 듯하다.

YS는 간담회 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설명했다.

“6·25전쟁 이후 가장 큰 위기다.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정도의 사안이다. (DJ와 노 대통령은) 공개사과해야 한다. 두 정권이 북한을 너무 미화했다. 8년 7개월 동안 4조5800억 원의 돈을 퍼주어 마침내 핵을 만들게 됐다. 그 돈으로 만든 것이다. 북한이 무슨 돈이 있느냐.”

또 YS는 “노 대통령이 북한의 변호사냐. 미사일 발사 때 방어용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대북 포용정책이라더니 결과는 북한이 우리를 껴안은 것이다. 전쟁을 각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YS는 “공산주의자와 중국을 믿지 말라”며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에 얽힌 비화도 소개했다. 장 주석이 방한 당시 청와대 오찬을 앞두고 북한 얘기만 하자는 데 합의해 놓고도, 정작 오찬에선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북한에 사람 보내고 있지 않느냐’며 거꾸로 북한 동향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해 어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DJ에게는 “재임 때 김정일을 만난 뒤 나 보고 김정일이 미군 철수 주장과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안 한다고 했다고 했다. 결국 김정일이 전부 속인 것 아니냐. 그리고 당시 평화가 왔다고 했는데, 핵 위기가 오지 않았느냐”고 따졌다는 것.

YS가 이처럼 대놓고 직격탄을 날렸지만 DJ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DJ는 다만 “북한의 핵실험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반드시 해체시켜야 한다”며 “군사적 징벌은 성공 가능성이 적고 부작용만 크다. 경제 제재는 북한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염두에 둘 때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너무 조급하게 대응하는 것보다 유엔 미 일 중 러 유럽연합(EU) 등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조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게 청와대의 전언이다.

그러나 YS가 기자 간담회를 통해 햇볕정책을 거듭 비판하자 DJ 측도 간담회 후 최경환 비서관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제대로 해 왔고 성과도 있다. 북-미 관계가 안 돼 진전을 하지 못한 것이다’고 말했다”고 발표하는 등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최 비서관이 전한 DJ의 해법은 “우리가 제재에 앞장설 필요가 없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전 전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핵 보유라는 전제하에 대처하는 것이 맞다”며 “한미동맹 강화가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대처방안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상황이 악화된 이상 상당 기간 유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YS의 주장과 맥이 통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발언을 주로 듣기만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 말미에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한미동맹을 기초로 해 국민 불안과 동요가 없도록 상황을 신중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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