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때리면 안은 강해진다” 체제연장 도박

  • 입력 2006년 10월 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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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홍보물 빼곡한 베이징 北대사관 4일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앞. 대사관을 지키는 중국 공안 뒤로 북한 정부의 활동상을 선전하는 사진 게시물이 빼곡하다. 이날 중국은 핵실험을 공언한 북한을 향해 “자제심을 갖고 6자회담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김정일 홍보물 빼곡한 베이징 北대사관 4일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앞. 대사관을 지키는 중국 공안 뒤로 북한 정부의 활동상을 선전하는 사진 게시물이 빼곡하다. 이날 중국은 핵실험을 공언한 북한을 향해 “자제심을 갖고 6자회담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올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 지도부는 ‘핵실험 카드’를 던질 시기를 저울질하며 고심해 온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 방침을 공식 표명한 다음 날인 4일 북한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선군사상, 혁명적 군인정신을 강조했다. 내부 결속과 함께 일전불사의 각오를 다지는 듯한 모습이다. 지난달 중순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그는 미국을 향해서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핵폭탄을 던지고 싶은 심정일지 모른다.

▽예정된 대량 아사=또다시 수십만 명이 굶주리고 유랑하게 된다면 북한 체제는 어떻게 될까. 정권을 향한 민심의 불만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지금까지 막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왔다. 식량지원을 따지면 세계 2위의 수혜국이다. 그러나 올해는 국제사회는 물론 해마다 평균 40만 t 이상을 지원하던 한국도 지원을 중단했다.

설상가상으로 7월 북한은 최악의 홍수피해를 보았다. 수많은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고 막대한 농지가 수해를 입었다. 대북지원단체 ‘좋은 벗들’은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수해로 5만4700명이 사망하고 250만 명이 집을 잃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철길도, 도로도, 집도 무너져 내렸다. 북한을 동서로 잇는 유일한 철길인 평양∼나진 선이 끊긴 지 2개월 만인 지난달 26일에야 겨우 임시로 개통됐다. 온 나라가 달라붙었는데도 두 달씩이나 걸린 실정이니 다른 곳의 피해복구는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지난 10년간 중국과의 무역 형태로 근근이 식량을 들여왔지만 최근에는 내부 외화 획득 자원이 고갈돼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가을이면 봄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지던 식량 가격이 지난달 말 현재 오히려 1.5배로 뛰고 있다.

최근 중국으로 나온 한 탈북자는 “유랑 걸식하는 ‘꽃제비’들이 갑자기 늘어났고 장마당에 가면 1990년대 중반의 대량 아사를 방불케 한다”면서 “(춘궁기인) 내년 봄이면 어떤 형편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등 돌린 민심=민심 역시 예전 같지 않다.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으로 추정되는 아사자가 발생해도 북한 체제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10년간 당국은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선전해 왔으나 형편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는 지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의식화’까지 되고 있다. 중국을 넘나들고, 탈북을 했다 강제 북송된 사람들만 수십만 명. 이들은 바깥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북한 전역에 설파하고 있다.

최근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60%는 된다고 전하고 있다. 평양에서 한국말 쓰는 것이 유행하고, 한국 상품이 가장 인기상품이 되고 있다.

체제를 유지할 간부들의 충성도도 낮아지고 있다. 마약중독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고, 마약 유통 범죄자의 절반 이상이 간부라는 사실만으로도 북한의 기강해이를 엿볼 수 있다(본보 9월 30일자 5면 참조).

선군정치도 흔들리고 있다. 국제사회의 식량원조가 중단되면 이 식량을 1순위로 받았던 군인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핵실험은 가장 효과적 통제수단=이런 상황에서 핵실험은 북한이 쓸 수 있는 최후의 내부 통제수단이 될 수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대량 아사 사태 때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급작스러운 붕괴, 홍수 피해에 원인을 돌리며 정권을 향한 화살을 피해갔다.

이번에도 “또다시 굶주리는 것은 정권의 실정(失政) 때문이 아니라 핵실험에 따른 미제와 추종 국가들의 보복 조치로 식량을 사올 기회마저 철저히 봉쇄됐기 때문”이라며 아사의 원인을 외부에 돌릴 것이 분명하다.

또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전례 없는 고강도 제재, 미국의 과격발언을 빌미로 계엄 상태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 내부 반발 움직임을 가차 없이 진압할 수 있다.

북한은 위기의 고비마다 ‘준전시상태’, ‘전투동원태세’와 같은 작전명령을 선포해 내부를 효과적으로 통제해 왔다. 올해 7월에도 미사일 발사 이후 긴장감이 높아지자 한 달간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북한 당국은 상시적인 ‘준전시상태’를 1, 2년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역설적으로 북한의 내부 통제와 결속력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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