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20전투비행단 배트팀

  • 입력 2006년 9월 19일 16시 44분


코멘트
"활주로 서쪽 300m 근방에 백로 10여 마리 출현."

14일 오전 11시 충남 서산시 해미면 공군 제20전투비행단(20전비). 최정예 KF-16 2기의 훈련비행을 10여 분 남겨둔 상황에서 활주로 통제탑으로부터 새떼의 출현을 알리는 무전이 급히 전파됐다.

비행장을 순찰 중이던 항공기 유도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활주로를 내달린다.

출격을 위해 정비를 받고 있는 전투기 너머로 백로 떼가 눈에 들어오자 장병 2명이 폭죽의 일종인 폭음탄을 발사하기 시작한다. 인근에 설치된 폭음기도 연신 대포 소리를 낸다.

대공포 훈련에 표적으로 쓰이는 모형 비행기 RC-MAT(Radio Control-Miniature Areal Target) 팀이 곧이어 달려왔다. 폭 160㎝, 길이 80㎝의 모형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날자 백로 떼가 활주로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원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활주로에서 새는 '살아있는 미사일'이다. 시속 960km로 비행하는 전투기에 무게 1.8kg짜리 새 한 마리가 부딪히면 전투기는 순간 64t의 충격을 받는다. 실제로 1996년 미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기지에서는 미 공군 E-3C 공중조기경보기가 '조류 충돌(버드스트라이크·Bird strike)로 추락해 승무원 24명 전원이 순직했으며 한국에서도 2003년 5월 예천공항에서 공군 전투기가 추락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새들의 활주로 접근을 막는 20전비 '조류 퇴치반(BAT·Bird Alert Team)' 21명은 1년 365일 새떼와의 전쟁을 벌인다.

20전비는 한국 최대의 철새 도래지 중 하나인 천수만 간월호가 인근에 위치해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특히 겨울철이 고역이다. 9월부터 몰려드는 110여 종 30여만 마리의 철새를 경계하느라 체감온도 영하 20~30도를 밑도는 활주로 위에서 하루 15시간 씩 초소 경계와 순찰을 반복해야 한다. 초인적인 의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뜻에서 20전비는 'BAT'를 영화 '배트맨'에 비유해 '배트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전비 'BAT'는 철새 가운데 가창오리 등 희귀 조류가 포함돼 있는 점을 감안, 사살을 최소화하는 대신 새들의 이동경로를 바꿔주는 '환경친화적' 방식을 도입했다. RC-MAT와 새들의 비명소리를 담은 '조류 퇴치 음향시스템' 등은 다른 비행장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또 밤에도 조류를 감시할 수 있는 적외선 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물론 공군 최초로 비행단 주변 조류의 생태와 이동 경로를 연구하는 조류감독관 직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20전비 조류감독관 현동선(52) 준위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조류 감시 활동은 항공기 안전보장의 첩경"이라며 "근무 시간이 길고 추위, 더위와 싸워야 하지만 장병 모두가 비행 사고 예방의 최전선에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산=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