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체력단련장 국감(國監)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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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역사에는 골프의 중독성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1457년 골프의 발상지로 통하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 국왕은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던 잉글랜드의 침략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군인들이 골프 재미에 빠져 무술 연마를 게을리 하자 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그의 아들과 손자가 왕이 된 뒤에 다시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것을 보면 왕명도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한나라당 국회 국방위원인 김학송, 공성진, 송영선 의원과 국방위 전문위원이 그제 해병대사령부 골프장에서 ‘나이스 샷’에 취한 모습이 방송사 카메라에 잡혔다. 카메라에 놀란 이들은 화장실로 달아났다. 정기국회 기간의 평일에 국정감사 대상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나라당이 평일골프 금지를 포함한 의원 윤리강령과 함께 ‘참정치 실천운동’을 선언한 지 2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골프의 중독성이 강하고 ‘웰빙정당’ 소리를 듣는 한나라당 의원들이지만 이 지경으로 분별력도, 참을성도 없단 말인가.

▷김 의원 등은 ‘국정감사에 대비하기 위한 현장 사전 답사 및 위원회 소속 의원 워크숍’을 한다며 1박2일 일정으로 해병대사령부에 갔다. 이들은 당일의 계획표에 골프 라운딩을 ‘체력단련장 답사’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군 복지시설인 골프장의 상황과 운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골프를 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군 의료시설인 국군병원의 상황과 운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군 환자 간병도 해보았는가.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로 국민이 불안해하고 예비역 장성과 장교, 전직 외교관과 경찰 총수들까지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500만 명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송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전작권 단독행사 추진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권 환수를 온몸으로 저지하기 위해 우선 골프라도 쳐서 체력을 단련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하지 그랬는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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