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盧정권의 안보정책 ‘국민 대표성’ 잃었다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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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를 포함한 국가정책의 수립과 집행에는 국민 의사가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그것이 국민주권(國民主權)의 헌법정신과 부합한다. 국가 안위, 즉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안보정책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작전권 단독행사, 자주국방의 길 아니다”▼

지식인들까지 대대적으로 일어나 전시(戰時)작전통제권의 성급한 환수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노무현 정권의 안보정책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기는커녕 진정한 우국충정(憂國衷情)을 거스르고 있다고 본다.

730여 명의 인문사회 분야 지식인은 어제 공동선언문에서 “국민적 논의와 합의에 기초해 신중하게 처리돼야 할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대 사안이 정치 우선적으로 졸속 처리되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권의 전시작전권 환수 추진이 ‘국민 대표성’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국민 대표성도 없는 정책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데 대한 경고와 다름 없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지식인들이 이처럼 대거 참여해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지식인들은 노 대통령이 전시작전권 환수를 주권 문제와 연결하는 것을 특히 경계했다. 이들은 “정부는 전시작전권 문제를 안보 효율성이 아닌 주권 또는 자주라는 정치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치문제화하고 있다”면서 “반미, 반동맹에 자주라는 외피를 입혀 전시작전권을 단독으로 행사하자는 시도는 진정한 자주국방의 길이 아니다”고 질타했다.

이들의 선언은 역대 국방장관 및 군 원로, 예비역 4성 장군, 육해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 등 예비역 단체, 재향군인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반대 성명과 시위에 뒤이은 것이다. 전시작전권 환수 반대 여론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는지 입증한다. 11일에는 역대 경찰총수들도 입장 표명을 할 예정이고, 8일에는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가 서울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까지도 지난해 12월 외교통상부의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를 포함한 현 정권의 안보정책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참여정부의 국가 안보전략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개념들의 나열 이상의 것을 보여 주지 못했다”며 “이 연장선상에서 제시한 ‘협력적 자주국방’과 ‘동북아균형자론’ 등의 개념은 국민 여론을 통합하기보다는 내부적 논쟁의 소지를 확대 재생산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노 대통령, 부시에 ‘논의 유보’ 제의해야▼

참여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 씨가 그제 본보 기고문에서 “만약 미국이 북한을 공격해 전쟁이 난다면 연합 전시작전권 해체로 제3국의 입장으로 바뀐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한 데 대해 이 정권 사람들은 과연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친북(親北) 자주가 오히려 북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북이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준비 중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한반도와 주변 상황이 요동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이래 8년 반 동안 햇볕정책으로 북을 변화시키려 했으나 북은 요지부동이고 우리의 대북(對北) 경계심과 안보의식만 무장해제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1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이 전시작전권 논의의 방향을 바로잡는 전기(轉機)가 돼야 한다. 미국 측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할 생각이 없으나 노 대통령이 얘기를 꺼내면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이 먼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환수 논의 유보를 제의하는 것이 옳다.

전시작전권 환수는 다음 정권으로 넘겨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 상황과 우리 군의 군사력 증강 여부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 순리다. 대한민국의 체제와 이념을 지킬 책임이 있는 정부가 실익 없는 ‘자주’에 매몰돼 악수(惡手)를 둔다면 국민과 역사에 죄를 짓는 결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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