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미온적 태도가 북한 탈선 부추겨"…골프장 이중계약 파문

  • 입력 2006년 9월 4일 21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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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질서가 없는 북한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해 당사자끼리 약속한 계약이 무시된다면 신규 사업은 불가능합니다. 남을 배신한 파트너가 나는 배신하지 않을까요. 이제 누가 북한을 믿고 새로운 거래를 하겠습니까?"

북한이 현대그룹이 사용권을 갖고 있는 개성공단 개발지역 안에서 골프장 등 대규모 리조트 건설을 위한 토지 사용 계약을 남한의 중견 부동산개발업체인 유니코종합건설과 체결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4일. 한 대기업 임원 A 씨는 "역시 북한은 투자 파트너로서는 믿을 상대가 못 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A 씨는 "저렇게 '막가파'로 나오는 북한에 우리 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끌려 다니면 결국 대북(對北) 사업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그룹, 북한에 다 주고 결국 뺨 맞나

현대그룹은 김대중 정부 당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주도로 대북 경협사업을 본격화했다.

2000년에는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4억50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5100억 원)를 불법 송금하는 등 최근까지 10억 달러 이상을 북한에 쏟아 부었다. 이 과정에서 그룹 경영에 큰 위기를 맞기도 했고 그룹 총수인 정몽헌 회장의 자살이라는 비극도 겪었다.

이런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현대는 전력, 철도, 관광, 댐 건설 등 '7대 사업권'을 북으로부터 얻어냈다. 3단계로 개발되는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서는 50년간 토지를 쓸 수 있는 사용증을 발급받았다.

하지만 현대는 이미 진행 중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1단계 개발사업 외의 사업에서 점차 배제되고 있다.

북한은 개성 및 백두산 관광사업과 관련해 사업권을 확보한 현대를 배제한 채 롯데관광과 절차를 협의 중이며 협상이 곧 마무리될 것이란 소문도 나돈다.

여기에 유니코종건에 개성지역 140만 평의 토지 사용권을 40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넘기는 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이번에 밝혀짐으로써 현대의 위기감은 증폭되고 있다.

●정부의 확고한 가이드라인이 필요

최근의 파행 책임이 1차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그동안 남북 경협사업을 총괄하는 정부가 지나치게 남북 관계를 고려해 미온적으로 대처해 온 것이 북한의 '탈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북한과 유니코종건의 계약 사실이 본보 보도로 알려진 4일 통일부 고경빈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은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아산이 북측과 협의한 개성공단지역 2, 3단계 개발사업과 유니코종건 측의 사업 내용이 중복 내지 충돌의 우려가 있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그렇듯 이중계약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일부는 이 브리핑이 현대아산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며 신언상 차관이 다시 브리핑에 나섰다. 신 차관은 "현대 측이 북한과 맺은 계약을 존중하며 현대와 조정이 되지 않을 경우 유니코종건이 협력사업승인을 신청해도 검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의 이같은 반응은 남북경협이라는 특수한 사업을 일반적인 '사적 자치의 영역'으로 만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전문가들사이에서는 대북사업이 단순한 민간기업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정부가 그동안 남북경협 사업과 관련해 명확한 선을 긋지 않는 바람에 기업들이 대북사업에 무분별하게 기웃거리고 북한의 버릇도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대 홍기택(경제학과) 교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한과 원활하게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남한 정부가 확고한 거래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줘야 한다"며 "대북사업 특성상 민간 자율에 맡겨둬서는 불확실성만 증폭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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