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정부때 이적단체 가입자도 ‘민주화 인사 유공자’

  • 입력 200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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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빌딩 11, 12층에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사무실. 이 위원회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8월 민주화운동을 하다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본 이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해 발족했다. 김재명 기자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빌딩 11, 12층에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사무실. 이 위원회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8월 민주화운동을 하다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본 이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해 발족했다. 김재명 기자
2000년 8월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민주화위원회)는 6년 동안 7388명을 민주화 인사로 인정했다. 여기에는 임채정 국회의장,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해찬 전 국무총리, 열린우리당 원혜영 장영달 유인태 의원 등이 포함됐다.

민주화위원회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정신적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명예회복, 신체적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보상을 해 줘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로 설치됐다.

지금까지 심의가 끝난 9997명 중 74%가 명예회복됐다. 육체 피해자 508명에게 보상금 265억 원, 생활이 어려운 1970명에게 생활지원금 255억 원이 지급됐다.

본보가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실과 함께 민주화위원회의 평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위원회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이 아닌 김영삼 정부 이후 과격시위를 벌인 사람과 법원이 이적단체로 인정한 8개 단체의 구성원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22명도 민주화 인사로 인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 “폭력행사 정당화 안된다” 반대의견 묵살

D대에 다니던 김모(28) 씨는 1997년 5월 광주 조선대에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주최로 열린 행사에 참가해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졌다. 김 씨는 1997년 12월 광주지법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민주화위원회는 지난해 9월 김 씨를 민주화 인사로 인정하고 법무부에 전과 말소를 요청했다.

위원들은 “김 씨가 김영삼 권위주의 통치체제에 항거함으로써 국민 기본권 신장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위원이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수단의 적정성을 일탈했다”며 반대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6년 이후 전국 22개 대학의 ‘자주대오’가 각각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지만 자주대오 소속원 11명은 명예회복이 됐다. 이들은 ‘지도이념은 주체사상’이라는 자주대오 활동가 조직에 가입한 뒤 한총련 집회 때 건물을 점거하고 폭력 시위를 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민주화위원회는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안양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 최근 10년 사이 법원이 이적단체로 판결한 42개 단체 가운데 8개 단체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명예회복 결정을 내렸다.

○ “심사 결과 미리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

2002년 5월 부산 동의대사건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관련자에 대한 명예회복 심사를 맡았던 민주화위원회 본위원 9명 가운데 김경동 김철수 노경래 위원이 사퇴했다.

당시 노 위원은 “이들 사건을 민주화로 몰고 가는 위원회의 방향에 실망해 더는 위원회에 몸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사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은 대부분 민주화 관련 단체가 추천한 사람들로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다. 그래서 심사의 균형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본 위원은 9명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분과위원들은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다. 2000년 출범 이후 분과위원을 지낸 137명 중 43명은 민주화 단체들이 모인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가 추천했다. 최근 그만둔 한 위원은 “민주화운동 경력의 진보성향 위원이 7 대 3 정도로 많은 데다 다수결이기 때문에 심사 결과는 미리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김영삼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 전문위원은 평가 자료에서 “문민정부는 1990년 인위적으로 3당 합당을 추진해 법안을 날치기 처리하는 등 의회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권위주의적 통치의 연장으로 인식되던 민자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평가했다.

자주대오 심사에 참가했던 한 위원은 “위원들이 자주대오가 법원에서 이적단체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며 “이들은 김영삼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의 연장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 위원 스스로 ‘명예회복’ 신청 5건

송모 씨는 지난해 5월 대학생이던 1970년대 시위에 참가해 ‘유신헌법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다 제적당한 것이 민주화 행위로 인정됐다.

당시 송 씨는 민주화위원회의 ‘관련자 및 유족 여부 심사 분과위원회’ 위원이었다. 이 분과위원회는 본 위원회가 최종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민주화 인사로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처럼 민주화위원회 일부 위원은 자신을 명예회복 심사 대상으로 올려 민주화 인사로 인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위원이 활동기간에 자신을 ‘명예회복’시킨 사례는 10건, 위원인 자신이 신청한 사례는 5건이었다.

분과위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일부 위원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을 보고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항의했지만 위원들이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상배 의원은 “민주화위원회의 순수한 출범 취지가 퇴색하고 심사위원 및 명예회복 대상자 선정에서 균형 감각이 부족한 면이 있다”며 “심사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공정한 결정을 위해 위원을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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