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품용 상품권 사업을 추진하던 A사의 B 사장은 21일 본보 취재팀과 만난 자리에서 로비 창구로서의 ‘386운동권’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가 S사에서 일하는 386운동권 출신 인사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해 3월. 경품용 상품권 인증업체 선정을 앞둔 시점이었다.
“어떻게 제 휴대전화 번호를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사람이었는데…. 2억 원을 주면 인증을 받도록 해 준다기에 일단 거래를 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문화관광부 공무원을 상대로 직급별로 체계적인 로비를 하고 있었는데 여권과도 선이 닿아야 할 것 같아 거래를 결심한 것입니다.”
B 사장은 “A사를 포함해 5개 업체만 선정되도록 도와주면 2억 원에 추가로 러닝개런티(수익 배분)까지 주기로 합의했는데 22개 업체나 선정됐고, 같은 해 6월 선정 과정에 대한 논란으로 인증이 취소돼 돈은 건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증이 취소되기 보름 전쯤 S사 관계자는 B 사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와 “경품용 상품권 인증이 모두 취소되고 곧 ‘지정제’로 바뀌는데 다시 힘을 써줄 테니 돈을 달라”고 제의했다고 전했다. 당시 S사 측은 요구 금액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B 사장은 S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지정 신청도 도중에 포기했다.
“지정제로 전환되자마자 경품용 상품권 업체들이 사활을 건 로비전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거래 비용’이 5억∼10억 원까지 올라갔어요. 그 돈을 내고는 도저히 사업을 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B 사장은 “당시 경품용 상품권 업체로 지정받기 위해 수십 개 상품권 업체가 사활을 건 로비전을 펼쳤기 때문에 386 운동권 출신들도 그 틈에서 한몫 잡으려고 브로커로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지정 결과 발표 직후 상품권 업계에는 ‘동아줄(여권 386 실세)을 잡은 업체는 (지정)되고 썩은 줄(공무원 등)을 잡은 업체는 탈락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습니다.”
B 사장은 “나도 잘한 것은 없지만 여당 현직 국회의원도 아닌 386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수십조 원의 이해가 달린 사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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