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의 남자’에 ‘No’못한 인사시스템

  • 입력 2006년 8월 3일 03시 09분


어수선한 부총리실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 논란으로 사의를 표명한 2일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들이 회의를 마치고 장관실을 나서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어수선한 부총리실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 논란으로 사의를 표명한 2일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들이 회의를 마치고 장관실을 나서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사의 표명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현 정부의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의 특징은 인사 추천과 검증을 분리한다는 것. 김대중 정부 때 양자를 모두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맡은 결과 인사 잡음이 많았다는 비판을 수용해 검증을 강화한 것이다.

비서실에 신설한 인사보좌관실(현 인사수석실)에서 인사를 추천하면 민정수석실에서 검증을 맡아 하고 그 결과를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에서 심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가 아들 이중국적 등의 문제로 5일 만에 낙마한 것을 계기로 인사시스템 재점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당시 이 전 부총리에 대해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사실상 부적격 판정을 내렸지만 인사추천회의가 이를 무시했다는 사실이 논란됐다. 더욱이 당시 인사추천회의는 이 전 부총리의 오랜 친구인 김우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했다.

청와대는 ‘더욱 투명한 검증’을 위해 지난해 9월 각계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자문회의’를 설치했다. 또 국회 인사청문회 범위를 전 국무위원으로 확대했다.

청와대는 5월 보도자료를 내고 △인사 검증을 최소 10일∼최대 한 달 이상 하고 있으며 △불명확하거나 후보자에게 불리한 사항에 대해 반드시 후보자에게서 소명을 듣고 있고 △‘인사검증자문회의’는 국민의 기대와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철저한 검증을 하고 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른바 ‘시스템’으로 견제와 균형이 조화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논문 표절 및 중복 게재 등의 논란으로 김 부총리가 낙마하게 됨에 따라 청와대의 ‘시스템 만능주의’가 오히려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부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에 대해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검증시스템의 원리가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청와대는 3월 공정거래위원장에 권오승 당시 서울대 교수를 내정할 때 “인사수석실에서 논문까지 샅샅이 검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 부총리에 대해서는 이런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총리의 특성을 감안했다면 논문을 검증했어야 하고 그랬다면 김 부총리를 둘러싼 의혹은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수많은 공직 후보를 검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수 출신 후보자 개인의 방대한 논문까지 일일이 대조하고 검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검증이 소홀했음을 시인했다.

일부에서는 김 부총리 사태를 계기로 인사 추천과 검증을 맡은 청와대 비서진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는 말도 한다. 이 전 부총리 낙마 때는 당시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주요 수석비서관 등 인사추천회의에 참여했던 6명이 동반 사표를 제출한 일이 있다.

이번 사태는 당장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후임 인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열린우리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기용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2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문 전 수석비서관의 법무부 장관 기용에 대해 “문 전 수석은 인격적으로 나무랄 데 없고 업무적으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국민이 적합하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후임 신인령-설동근씨 등 거론

한편 김 부총리 후임과 관련해서는 한명숙 국무총리가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을 비롯해 설동근 대통령자문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허운나 한국정보통신대 총장도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실패 사례
시기고위 관료사퇴 이유
2003년 9월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국회해임안 가결 이후 사퇴
2003년 10월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잇단 실언으로 취임 14일 만에 사퇴
2003년 12월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전북 부안군 방사성폐기물처분장 파문으로 사퇴
2003년 12월윤덕홍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교육행정정보시스템 유출 파문으로 사퇴
2004년 1월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외교부 간부 대통령 폄훼 발언으로 사퇴
2005년 1월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대기업 사외이사 겸직과 판공비 과다 사용 등 각종 비리 의혹으로 사퇴
2005년 3월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사퇴
2005년 3월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부인의 부동산 문제로 사퇴
2005년 3월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부동산 투기 연루, 인사 청탁으로 사퇴
2005년 7월홍석현 주미대사국가안전기획부 X파일 연루 의혹으로 사퇴
2006년 4월이해찬 국무총리부적절한 골프 파문으로 사퇴
2006년 8월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논문 표절 및 중복 게재 의혹으로 사퇴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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