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 수도권 범여권 대표성에 치명상

활짝 웃는 조순형 당선자 26일 서울 성북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최수영 후보를 누른 민주당 조순형 당선자가 민주당 서울 성북구 당원협의회 사무실에서 꽃다발을 목에 걸고 활짝 웃고 있다. 김미옥 기자

7·26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조순형 후보의 당선은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조 후보 승리의 가장 큰 현실적인 의미는 열린우리당이 그동안 수도권에서 누려 온 반(反)한나라당, 범여권 세력의 대표성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경기도당 간부들의 ‘강원도 수해지역 골프’ 등 선거 막판에 불거진 한나라당 쪽의 악재에 대한 반사이익이 원내 1당인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원내 11석의 군소정당인 민주당으로 쏠리는 양상을 보인 것.

실제 성북을의 경우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 득표율은 50.3%였으나 5·31지방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구청장 후보는 26.6%를 얻는 데 그쳤고, 이번 선거에선 10.0%를 얻는 데 머물렀다.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지방선거 때 7.5%를 얻었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44.3%를 득표했다. 조 후보 개인의 ‘인물론’이 먹혀든 측면도 있지만 각 후보 진영의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도 열린우리당을 앞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조 후보의 당선은 열린우리당을 더는 정치집단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력이 민주당에 기회를 줄 테니 새로운 틀을 만들어 보라고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열린우리당 측에서도 이번 선거의 의미를 정계 개편에 대한 ‘압박’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정계 개편을 향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민주당 내부의 변화가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한화갑 대표 중심으로 당이 운영됐으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대표가 대법원 확정 판결을 앞두고 있어 지도부 구성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다.

고건 전 국무총리를 대권 후보로 옹립하려던 일부 민주당 세력들도 다시 당으로 쏠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조 당선자가 민주당 내의 새로운 질서 형성과 정계 개편 등의 과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성북을에서의 ‘3등’이라는 성적표에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수도권은 전통적으로 제1당과 제2당의 양강 구도에 들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선거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당장은 민주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는 듯 보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어느 세력이 새 정치에 대한 명분을 어떻게 걸고 나오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의 의미가 민주당을 중심으로 헤쳐 모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덩치’가 크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선택이 정계 개편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은 민주당 측도 인정한다. 이 점에서 정치권 관계자들은 “당장 정계 개편에 가속도가 붙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창교 수석전문위원은 “정계 개편의 본격적인 움직임은 연말쯤 돼야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조 당선자가 탄핵 때도 한나라당과 공조한 경력이 있다는 점에서, ‘반노무현’ 연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과의 제휴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조 당선자가 영호남 화합, 범우파 연합 구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조 후보의 당선으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수그러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대표였던 조 당선자는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을 주도한 주역이다.

열린우리당이 그동안 “탄핵 세력은 역사의 죄인”이라고 비난해 온 만큼 조 후보의 당선은 탄핵의 정당성 논란과 직결될 소지가 있는 것.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는 탄핵을 키워드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탄핵에 면죄부를 준 것도 아니다”(국민대 김형준 교수)는 해석도 나오지만 조 후보의 당선은 탄핵 논란이 정치적으로 소멸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