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5년 9월 28일 03시 0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요즈음은 자기 홍보, 자기 광고 시대인 만큼 홍보 자체를 탓할 의도는 없다. 상품을 파는 기업은 물론이고 취업에 몸이 달았거나 결혼을 앞둔 개인도 자기 홍보에 나서는 판인데, 정부라고 예외일 것인가.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의 최근 물량 공세가 생뚱맞게 보이는 것은, 다수당인 여당까지 끼고 있는 ‘배부른 처지’에 국민의 세금으로 대외 홍보가 아닌 대(對)국민 홍보에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국정홍보처가 아니더라도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는 매일 정상적인 방식으로 자기 홍보를 하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장관들이 정책 발표를 할 뿐 아니라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수시로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 대담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외 수업처럼 이루어지는 국정 홍보는 ‘뱀의 다리’에 비견될 만큼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진정한 국정 홍보는 국정을 통하는 길뿐이다. 판사가 판결을 통하여 말하는 것처럼, 대통령도 ‘국민께 드리는 글’이나 책자보다는 정책을 통하여 국정을 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왜 대대적인 물량 공세에 나섰을까. 정부의 인기가 추락하고 대통령 지지도가 20% 내외에 머물고 있는 까닭을 홍보 부족으로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절박한 심정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참여정부 정책 홍보의 결함은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거짓말을 퍼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찍이 플라톤은 정부는 ‘고상한 거짓말(noble lie)’을 할 수 있다고 설파했지만, 참여정부의 사실 왜곡은 ‘고상한 거짓말’보다 ‘빨간 거짓말’에 가깝다. ‘전 국민의 45%가 셋방살이를 하는데 어떤 이는 수백 채의 집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홍보 책자를 보라. 실제로 집을 수백 채 갖고 있다는 10명을 살펴보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임대사업을 하는 사람과 아파트 건설업자로 미분양 아파트의 명의를 억지로 떠안은 경우다. 하루아침에 임대사업자와 건설사가 수백 채의 집을 싹쓸이한 투기꾼으로 바뀐 것이다. 또 보유세 1%는 어떤가. 미국 일부 주(州)의 제한된 가구와 관련된 통계를 가지고 ‘선진 국가의 보유세율은 1%’라고 뻥튀기한 것이다.
물론 사실이 잘못되었다고 하여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事實)’이 아니더라도 ‘진실(眞實)’로 다가오는 경우는 꽤 있기 때문이다. 얼굴이 별로 예쁘지 않은 딸에게도 부모는 “너만큼 예쁘고 귀여운 애는 없어”라고 말한다. 분명한 사실의 왜곡이다. 그렇지만 딸은 부모가 위선적이며 거짓말을 했다고 분개하기보다는 ‘사실’을 넘어 사랑의 ‘진실’을 믿는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꾸며 말하는 부모가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을 넘어선 큰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통계 왜곡은 어떤가. 설사 ‘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일까. 행정수도 이전을 강변하기 위해 서울을 “멕시코시티보다도 삶의 질이 못한 곳”이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서 조국의 오랜 수도인 서울에 대한 사랑의 진실을 느낄 수 있는가. 또 “서울대 입학생의 60%가 강남 출신”이라고 강변하는 대통령의 사실 왜곡에서 서울대나 강남에 대한 사랑의 진실이 묻어나는가.
![]() |
정부가 극단적인 사례를 부각시키기 위해 각종 엉터리 통계를 쓰는 걸 보면, 기득권자로 분류된 사람들을 적대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너무나 확연해서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동료의식의 진실을 음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객관적 자료에 입각한 사실성도 없고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사랑의 진실성도 부족한 국정 홍보를 무슨 이유로,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책임 있게 답변할 수 없다면, 이른바 ‘과외용 국정 홍보’는 아예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
박효종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