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연정제안 차버린 한나라, 국정운영 관심 없는것”

  • 입력 2005년 7월 3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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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대(大)연정 제안을 설명하거나 비판론을 반박하면서 거칠고 생경한 표현을 곳곳에서 썼다.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 해소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더 향상시키고 재건축하자는 것”이라며 “이 제안을 귀담아듣지 않고 거역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앞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는 정파 간 이견을 조정하고 절충하는 과정인데도 ‘내 말 안 들으면 망한다’는 식으로 ‘저주성’ 언급을 한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 태도라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은 또 한나라당이 대연정 제안을 거부한 데 대해 “국정을 운영할 기회가 생기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환영해야죠”라며 “그런데 (한나라당이) 그것을 일거에 차 버리는 것을 보면 국정운영에 별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라고 비판했다.

이에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대통령의 이 발언은 한나라당을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을 제안해놓고 한편으론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데 누가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느냐”라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또 여권 내부 및 친노(親盧) 진영 등에서 “정권을 남에게 주라고 뽑아줬느냐”고 비판하는 것을 반박하는 가운데 “(국민은) 노무현이 외교를, 경제를 제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해 뽑은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말도 했다. 국민이 자신을 뽑아준 것은 (경제보다는) 지역구도 해소 등 사회에 필요한 본질적 개혁을 원칙적으로 밀고 가라는 명령이며, 연정은 그런 명령을 수행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국민의 뜻을 지나치게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만만찮다. 당장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때 ‘경제성장률 7% 달성’ 등을 공약한 것과도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진표(洪晋杓)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은 “대통령은 지역구도 해소가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의 국민 정서와는 많이 거리가 있는 듯하다”며 “뭔가를 강요하는 일방적인 목소리로 들린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 뒤숭숭한 열린우리 黨政靑 수뇌 “공론화 나선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일단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환영했다. 여권 수뇌부는 29일 저녁 이른바 ‘당-정-청 12인 회의’를 열어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적극 공론화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소장파와 호남권 의원들은 노 대통령을 겨냥하며 반발했다.

특히 신중식(申仲植)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대연정 제안 서신은) 과거 제왕적 총재 이상의 권능으로 당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내려 보낸 교서나 칙령처럼 보인다”며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어 신 의원은 “대통령직을 수행하시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크면 매도하고 규탄했던 정당에 대연정의 주도권 행사를 요구하고 국무총리와 내각의 구성을 맡기겠다고 하니 평당원들은 지극히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고 밝혔다. 또 그는 “당 중앙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즉각 소집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쉽다 못해 어이가 없다”고 당 지도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신 의원은 “대통령이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야당 대표들과 여야 간부들,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중앙상임위원들 간의 격의 없는 대화를 먼저 시작하시는 것이 어떠하냐”고 제안하며 글을 맺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은 싸워서 분쇄해야 할 대상이지 연정을 할 대상은 아니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유선호(柳宣浩) 의원은 “당 지도부는 대통령 제안에 대해 의견 수렴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절차를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무시하는 한나라“실현 불가능한 공상” 일축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서신에 이어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연정을 거듭 제안했지만 한나라당 등 야당은 또다시 한마디로 일축했다.

한나라당 유승민(劉承旼) 대표비서실장은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입장은 변한 게 없다. 권투에서 불리할 경우 상대방을 껴안는 클린치 작전 같은 꼼수”라고 비판했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실현이 절대 불가능한 공상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일부 당 중진들이 흔들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 고위 당직자는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보장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의원 중엔 연정이 되면 자신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 내 전략통인 박형준(朴亨埈) 의원도 이날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 대통령의 제안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이를 헌법체계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헌을 생각해 보자는 말로, 당 지도부와는 사뭇 다른 입장이다.

민주노동당은 “연정과 선거구제를 교환하겠다는 발상은 정치개혁의 대의에도 맞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없다”고 비판했다. 또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 박 대표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스토커 역할을 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오히려 한나라당에 입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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