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영찬]盧대통령의 ‘유목민 리더십’

  • 입력 2005년 3월 9일 18시 57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성격은 똑 부러진다. 불투명과 모호함은 그의 기질과 거리가 멀다. 노 대통령은 그래서 현안을 피해 가는 법이 없다.

지난해 9월 “국가보안법은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해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논란을 단칼에 정리했다. “과거사 청산과 역사의 진실 규명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거역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해 ‘과거사 규명’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민감한 외교적 현안에 대해서도 그만큼 직설 화법을 구사하는 대통령은 흔치 않다. 지난해 11월 방미 기간 중 “북한의 핵, 미사일 보유 주장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는 발언이 대표적인 예다.

8일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다시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 일각에서 “할 말을 한다”는 긍정적 반응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재계 인사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을 ‘유목민형(型)’으로 비유했다. 유목민을 이끄는 장수는 선봉에서 신속하게 기마병(누리꾼)을 이끌고 적진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따라서 권위보다는 동지애, 조직보다는 소부족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한다. 반면 ‘정착민의 리더십’은 후방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관료제와 중앙집권적 권위에 의존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국내 정치 현안도 아닌 대외(對外) 현안에 대해 ‘똑 부러지는’ 언급을 하는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외교통상부와 통일부가 그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똑 부러진 답을 피해온 것은 바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협상의 폭과 여지를 넓히기 위한 것.

그러나 국가 최고 지도자가 외교 현안에 대해 ‘마지막 해결사’로 나서는 것은 외교라인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상대 국가에 이쪽의 최후 카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외교에서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금기사항에 해당한다.

더욱이 ‘버퍼존(완충지대)’이 사라진 외교가 왕왕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성마저 안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듯하다.

윤영찬 정치부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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