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다자회담의 덫(Ⅱ)

  • 입력 2005년 3월 2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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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조목조목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미국은 안전보장과 대등한 자격의 협의를 약속하고, 신뢰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 북한을 압제국가로 규정한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래야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누가 국제적 약속을 깨고 핵 개발에 나섰는지, 6자회담이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 헷갈린다. 궁지에 몰려야 할 북한이 오히려 채권자 행세를 하는 이상한 상황, 이것이 6자회담을 둘러싼 공방의 현주소다.

2003년 6월 ‘다자회담의 덫’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남북문제 해결을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에 의존하려 한다면 편 가르기와 시각 차이 때문에 한국은 고통과 무기력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시는 북-미-중 3자회담이 진행되던 때여서 6자회담은 밑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2년 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덫에 걸리거나 수렁에 빠졌다고밖에 할 수 없는 한국 외교의 위기는 다자적(多者的)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북한은 물론 해결을 도와줄 것으로 믿었던 중국과 일본마저 한국의 짐이 되기 시작했다. ‘조율된 행동’을 요구하는 미국이 끝까지 한국과 ‘2국(國)3각(脚)’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中 부담되고 日 멀어지고▼

중국은 6자회담 틀에서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귀하신 몸’이 된 지 오래다. 지난달 북한이 핵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불참 선언을 하자 한국과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동시에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미국과 한국 대표들이 달려와 아쉬운 소리를 한다. 중국은 한국의 ‘북한 설득 요청’을 ‘굴러 들어온 영향력 확대’로 해석하지 않을까.

외교는 철저한 주고받기로 이뤄진다. 국제무대에서 특정국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문제를 놓고 중국에 부탁을 해야 하는 수세적 상황은 다른 한중 현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국군포로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한다면 우리 정부가 강력히 항의하고 원상회복을 요구할 수 있을까. 중국 당국이 한국 국회의원들의 기자회견을 강제로 저지하고 폭력을 행사한다면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할 수 있을까. 북한이 버티면 버틸수록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대중(對中)외교는 더욱 숨을 죽이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일본은 6자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북핵보다 더 큰 현안으로 만들었다. 일본이 6자회담 참가국의 공조(共助)를 북핵 해결의 열쇠로 존중한다면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을 사실상 봉쇄하는 대북 경제제재를 단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도와 과거사로 인한 한일의 갈등은 일본의 동상이몽(同牀異夢)을 부추길 뿐이다.

▼北에 ‘NO’라고 해야▼

한국이 군색해진 것은 6자회담을 표류하게 한 북한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을 탓하지 않는 한 중국과 일본의 행보에 불만이 있어도 볼멘소리를 하기는 어렵다.

한승주 전 주미대사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무기한 불참 선언을 한 2월 10일이 2차 북핵 위기의 데이 원(DAY ONE·첫 날)인 것 같다”고 말했다. 1차 북핵 위기 때 외교부 장관으로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했던 경험자의 진단이다. 다자회담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정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북한이 또 다른 도발을 한다면 벌컥 화부터 내기 바란다. 그래야 미-일-중에 공조를 요구할 자격이 생긴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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